‘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지난 25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난 전유성씨가 1995년 낸 책이다. 배꼽 잡을 이야기도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풀어내던 그는 ‘개그계의 대부’로 유명하지만 사실 빼어난 베스트셀러 작가기도 했다. 이 책은 50만 부 이상 판매됐다. 당시는 컴퓨터가 지금의 인공지능(AI)만큼 광풍이 불던 때였다. 그도 초보용 책을 사 봤다. 그런데 모르는 전문용어투성이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며 겨우 컴퓨터를 배운 게 책을 쓴 동기다. ‘까막눈만 아니면 할머니도 배울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고 삽화도 충분히 넣었다. 탁월한 입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내용은 친근감을 줬다. 이 책은 낯설고 두렵기만 한 존재였던 컴퓨터를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는 데 기여했다. ‘PC통신,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인터넷,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시리즈까지 나오면서 정보통신부로부터 상도 받았다.
■ 이 외에도 그가 쓴 책은 많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등에도 기발한 생각과 지혜, 해탈한 듯한 철학과 해학이 넘쳐난다.
■ 그가 총 23종의 많은 책을 낼 수 있었던 건 세상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지고 항상 책을 읽으면서 연필로 메모하는 습관을 둔 덕이 컸다. 그는 사실 개그맨이 되기 전 방송용 원고를 써 주거나 영화사 광고 카피라이터 일도 했다. ‘하늘에서 콜라병 하나가 떨어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부시맨) ‘당신이 미성년자였을 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화’(겨울여자2) 등이 그의 작품이다.
■ 그동안 우리에게 준 웃음과 용기를 생각하면 그는 단순히 ‘개그맨’으로 부르고 말 게 아니라 ‘어른’이나 ‘선생님’으로 예우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는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며 늘 자신은 낮추고 다른 이를 격려했지만 과연 전유성만큼 베푸는 삶을 사는 이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웃지마, 너도 곧 와.” 그가 마지막으로 주고 간 웃음과 화두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박일근 /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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