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도 보지도 못한 ‘유튜브 사과’의 새 지평을 연 고위관료, 등장도 퇴장도 생경했던 전 국토부 차관 이상경은 무주택자에게 ‘여러분은 나중에 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15억 원 주택이 서민 아파트(여당 국토위 간사)가 되고만 대폭등 시대에, 나중에 돌아보면 그의 말은 귀담아들었어야 할 훌륭한 조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토록 열 받은 건 ‘여러분은 나중에’라는 말 앞에 ‘물론 저는 이미 샀지만’이란 전제가 생략됐기 때문이다.
■ 56억 원 자산가인 그는 전세를 안고 33억 원 아파트를 구매한(아내 명의) 갭 투자자였다. 주전세(집을 팔면서 그 집 세입자가 되는 것), 일시적 2주택 특례(양도세 감면) 등 전문가도 감탄한 온갖 기술을 동원해 상급지 갈아타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자신을 따라하는 건 원하지 않았는지, 갭 투자를 금지한 10·15 대책을 주도했다. 스스로는 잘 살아보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가 관여한 부동산 정책은 남의 욕망을 틀어막는 규제들로 점철됐다.
■ “돈 벌어 집 사라”는 이상경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 박근혜 정부 부총리 최경환이다. 그는 나중에 그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대폭 완화는 누가 봐도 “빚내서 집 사라”는 시그널이었다. 일견 저속해 보였지만, 그 결과 최 전 부총리가 ‘겨울’이라고 표현했던 부동산 시장엔 곧장 온기가 돌았다. 오히려 정책 효과가 너무 지나쳐, 가계대출이 폭증했고 시중의 돈이 온통 부동산으로 쏠렸다.
■ 욕망 전도사 최경환, 금욕 주술사 이상경의 양극단 접근은 반면교사다. 정부가 주거 욕망에 불을 댕겨서도 안 되지만, 욕구 자체를 원천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벼락거지는 될 수 없다는 몸부림, 새 집에 살고 싶단 희망마저 모조리 죄악시한다면, 고이고 쌓인 욕망은 언젠가 한꺼번에 폭발해 통제 불능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중용·분수를 가르치는 계몽기관이 아니다. 욕망이 질서 있게 흐를 길을 열어주고, 때론 욕망을 동력 삼아야 한다. 인간 본성을 거스른 정책이 성공한 예는 드물다.
<이영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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