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봉·정년·연구 인프라 취약점 집중 파악
▶ KAIST·출연연에 700건 이상 메일…과기계 “시스템적 공략”
중국이 '천인계획(千人計劃)'을 앞세워 한국 과학기술 인재들을 정밀하게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연구자 개인의 연봉, 가족, 연구 분야, 근무 환경까지 세세히 파악한 뒤 수십억 원대 연구비와 고연봉을 내세워 영입을 시도하는 '맞춤형 스카우트 전략'이 확인됐다.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가 해외 고급 과학기술 인재를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연합뉴스 취재 결과, 중국은 단순한 영입 제안을 넘어 '개인별 데이터 기반 접근'으로 한국 과학기술계의 구조적 취약점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내 연구·이력 모두 알아"…젊은 연구자엔 '고연봉·반복 제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인 한 교수는 지난해 말 중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는 "줌(Zoom) 미팅을 해보니 내가 연구하는 세부 주제와 과거 연구 경력, 대학 내 역할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며 "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3년간 연구실을 운영하면 수십억 원 규모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구체적 제안이 나왔다"며 "자기들이 잘하는 분야가 아니라 '부족한 분야'를 보완하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방식이라면 왜 중국이 빠르게 성장했는지 이해가 됐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젊은 한국 연구자들에게는 고연봉과 연구비를 내세운 반복적 영입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림원 소속 한 출연연 연구자는 "인지도 높은 석학뿐 아니라 저 같은 젊은 연구자에게도 SNS를 통해 직접 접근했다"며 "돈만 생각하면 솔직히 혹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림원 교수는 "최대 연봉 8억원을 언급하는 이메일을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받고 있다"며 "네이처, 사이언스 등 저명 학술지에 논문이 실릴 때마다 더 자주 연락이 온다"고 밝혔다.
◇ 연봉·정년·연구 인프라…한국 과기계 '취약 지점' 정조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최수진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산하 출연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KAIST에만 149명이 천인계획 관련 초빙 메일을 받았고, 출연연에도 600건 이상 메일을 보내며 접근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접근법 차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과기한림원이 지난 5월 한림원 정회원과 차세대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 내 영입 제안을 받은 경우가 61.5%에 달했으며 이들 중 82.9%가 중국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세대별로 보면 45세 미만의 경우 해외 영입 시도 본국 연구자와 동일한 조건의 연구직을 제안한 경우가 87.5%로 가장 많았지만, 55세 이상 과학자에게는 연구직뿐 아니라 단기 연구프로젝트 참여, 1년 이상 자문 활동 혹은 강의 활동 등을 고르게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연구자에게는 높은 연봉 등을 담은 제안을 수시로 보내며 유혹하고, 석학급 이상 연구자들에게는 접점을 늘려가며 점차 벽을 허물다 연구직 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과학기술계는 실제로 중국이 접근하는 방식이 연구자들이 부족한 지점과 상당 부분 일치해 효과가 크다고 분석한다.
과기한림원 조사에서 해외 영입을 긍정 검토한 이유에 대한 물음에 45세 이하 연구자는 고용 조건과 인프라를 높게 꼽았지만, 55세 이상은 석학 제도 활용 부재를 더 높게 꼽았다.
두뇌 유출의 주된 원인으로도 55세 이하 연구자는 연봉 등 보상 체계 한계와 소속 기관의 낮은 연구환경 지원 수준이 더 영향을 준다고 응답해 55세 이상과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정년에 민감한 55~64세 연구자는 해외 영입 제안을 검토 중인 비율이 30%로 전체 19.5%보다 훨씬 높았다.
◇ 두뇌 유출, 국가적 손실…"국내 생태계 정교한 개혁 시급"
연구자들은 능력 있는 연구자에게 기회를 주면서 젊은 세대의 기회도 늘릴 수 있는 정교한 과기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중국의 조직적인 인재 유출 시도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림원의 한 연구자는 "과학기술 생태계 기반 핵심은 우수 연구인력이며 우수 과학자의 해외 유출은 매우 심각한 국가적 손실이 야기된다"며 "최근 박사급 유학생, 연수생들의 귀국 의지가 희미해지는 상황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박사를 육성할 수 있는 환경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리더급 연구자와 신진 연구자 교류가 지속해 유지될 수 있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다른 연구자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과학정책으로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나라의 두뇌 유출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이탈하는 두뇌의 국내 정책 유도조차 시도하지 않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고 꼬집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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