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 경제학은 기계적 모델을 채택했다.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개개인은 주어진 환경에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대안을 선택해 결과적으로 기계처럼 예측 가능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인간의 복잡한 경제활동을 물리법칙을 닮은 연립방정식과 아이작 뉴턴이 물려준 ‘균형’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 기계적 모델은 1970년대 한계에 부딪힌다.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에 해답을 주지 못했다. 유효수요를 자극하면 기계처럼 경기가 살아난다던 ‘케인스주의’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 주도 확장 정책이 경제를 살리긴커녕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다. 케인지언들이 혼돈에 빠지면서 대안적 설명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론이 ‘합리적 기대가설’과 행동경제학 등이다.
■ 시민들이 정부 정책마저 예측해 행동하기 때문에 당초 기대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게 ‘합리적 기대가설’이다. 정부가 규제를 내놓을수록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해 오히려 수요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행동경제학은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합리적 이성 대신 인간 본능의 역할에 주목했다. ‘디폴트 옵션’ ‘손실 회피’ 등 게으른 소비자들이 ‘이익 극대화’를 포기하는 사례를 설명했다. 합리적 기대가설(로버트 루카스?1995년)과 행동경제학(대니얼 카너만?2002년) 모두 노벨경제학 수상자를 배출했다.
■ 방향성은 달랐지만 두 이론은 ‘기계적 모형’의 폐쇄적 시각을 딛고 열린 시스템을 지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폐쇄 경제에서 정부의 의도된 개입보다 외부와 연결된 시장에서 기업과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강조했다. 재정을 풀고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유동성, 금리, 환율로 실물과 금융시장이 얽히고, 한국 원화가 서학개미들에 의해 미국 달러화로 자유롭게 바뀌는 시대다. 내란 청산하듯 시장을 억눌러 본들 ‘왜곡’만 커질 수 있다. 1,470원대 환율로 1,700원대 휘발유를 넣으면서, 권력도 통제할 수 없는 ‘열린 시장’의 거친 야수성을 실감한다.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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