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0주년을 맞아 신혼 여행지였던 푸켓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사이 좋은 아름다운 모습같지만 결혼은 대략 이랬다. 한 10년은 ‘그래, 꾹 참자.’ 또 10년은 ‘더는 못살아!’ 이후 10년은 ‘나의 길을 찾아서’ 물론 막 금슬 좋고 한결같이 가슴 뛰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부정맥 아닐까?) 하지만 결혼은 지난한 현실이다. 아름다운 꿈같은 몇날들로 평생을 버티는 것인지 모른다. 잊지 못할 기억 몇 개 죽을 때까지 안고 사는 것인지 모르고.
에메랄드빛 바다를 실컷 보고, 기막힌 선셋속에서 저녁을 먹고, 세상 행복한 사진들을 남겼지만, 삶이란 해안가의 그림같은 풍경이 아니라 태평양 바다 한복판이란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순간이 귀하다보니 사람들은 그다지도 사진을 찍어대고 새겨두려 애쓰는지 모른다고.
나이 들수록 사는 일에 능수능란해질줄 알았더니 여전히 헤매고 종종 헛발질이다. 관계에 조심했더니 부지불식간에 마음이 툭 끊어지기도 하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잘 되지 않아 괴롭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때로 폭풍우 치는 바다처럼 두려운 것이 된다.
과거는 잘도 폭로되고 현재는 어떻게든 드러나며 미래는 한순간에 미스테리가 된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지만, 어쩌면 지금의 나는 한치의 오차없이 과거의 내가 만든 것일테다. 결국 스스로의 책임이고 그를 수습하는 과정이 삶인 셈이다.
우린 모두 삶이라는 배에 꿈이라는 돛도 달고 현실이란 노를 저어 망망대해로 나아간다. 햇살 빛나는 그림같은 바다도 만나겠지만 배가 뒤집어질 것 같은 순간도 수없이 만날 것이다. 하여 담대하게 마음 먹는다. 파도에 맡기자고. 악착을 떨어 이겨 먹을 일도 없고, 그저 삶이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의 리듬이 아니겠냐고.
이번 여행의 주제는 아무 것도 안하기였다. 매일 리조트 근처에서 마사지나 받고, 수영하고 바다 산책하고, 맛있는 식사와 평범한 웃음으로 채웠다. 정말 좋은 날이란 대단한 이벤트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수다 떨다가 맥락도 없이, 지금이 너무 좋아! 라고 소리 질렀는데, 바로 이 순간이 또 한 몇년을 버틸 기억으로 각인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흔들거리고 시끄러워도 우리에게 오는 파도의 결대로, 그 리듬대로 타고 나간다. 한 배를 탄 우리, 두려울 것도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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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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