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SJ, 탈취·피해 보도
▶ 불법 세탁·무기조달 등
▶ 미 금융규제망 회피하며 김정은 사치품 등 구매

북한은 전 세계 암호화폐 탈취를 주요 외화벌이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조성된 자금은 김정은 일가의 사치품과 무기 구매 등에 사용된다. [로이터]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미국의 제재를 피해 자금을 조달하는 주요 통로인 암호화폐 탈취에는 이를 현금화하는 ‘어둠의 은행가’들이 수십명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심현섭(42)이다. ‘심 알리’ 또는 ‘심 하짐’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주로 아랍 국가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중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방수사국(FBI)은 그에 대한 현상금을 700만달러로 올렸다. 월스트릿저널(WSJ)이 연방 법무부의 기소장 등을 토대로 25일 보도한 심현섭의 주요 임무는 해외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가를 위한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일이었다.
북한의 외화벌이는 신분을 위장한 수천명의 북한 노동자들과 해커들을 통해 이뤄진다. 이들은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매년 수억달러를 벌어들인다. 문제는 이렇게 벌어들인 불법자금을 북한과의 연계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미국의 금융규제를 피해 현금화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심현섭 같은 은행가들이 등장한다.
심현섭은 북한 대외무역은행 계열사 대표로 해외에 파견돼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활동했다. 탈북한 류현우 전 주쿠웨이트북한대사관 대사대리는 그곳에서 심현섭을 여러 차례 만났다고 밝혔다.
심현섭은 류 전 대사대리에게 자신의 자금세탁 수법을 설명했다고 하는데, 브로커를 통해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바꾼 뒤 이를 위장회사 계좌로 옮겨 인출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북한의 ‘IT 노동자들’이 해킹을 통해 암호화폐를 탈취하면 이를 심현섭에게 보낸다. 추적이 어렵게 디지털 월렛을 여러 차례 거친다. 심현섭은 미리 매수해 둔 UAE나 중국 등의 브로커에게 암호화폐를 건네 달러로 바꾼다. 브로커들은 이 돈을 심현섭의 위장회사 계좌로 이체한다.
심현섭은 북한으로 송금하지 않고, 직접 김정은 정권을 위한 물품을 구입한다. 지난 2019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헬기를 구매해 북한으로 배송하는 데 심현섭이 세탁한 30만달러가 쓰였다. 이 돈은 짐바브웨의 한 로펌을 거쳐 갔다.
정상적인 금융거래로 위장된 그에게 서구 유수의 은행들은 농락당했다. 기소장과 관련 법원 서류에 따르면 한 건의 공작에서 심현섭은 시티·JP모건·웰스파고 등 미 은행들을 통해 310건, 7,400만달러에 달하는 금융거래를 성사시켰다.
암호화폐 절도를 추적하는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자료에 따르면 심현섭 같은 북한 은행가들은 몇 년에 걸쳐 탈취된 암호화폐 60억달러 이상을 북한을 위해 세탁했다. 류 전 대사대리는 “심현섭은 추진력 있는 행동가(go-getter)였다”며 “그는 아랍권에서 자금세탁과 관련된 모든 일에 가장 유용한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심현섭은 북한의 또 다른 외화벌이 수단인 ‘가짜 담배’의 제조 및 밀매에도 역할을 했다. 북한은 말보로 등 유명 브랜드 담배를 가짜로 만들어 베트남과 필리핀 등에서 파는데, 여기에 필요한 담뱃잎을 조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현섭은 중국이나 UAE 등에 차려둔 위장회사를 이용해 담뱃잎을 구입, 배를 통해 북한으로 보냈다. 이를 위한 대금 역시 시티·JP모건·웰스파고·도이체방크·HSBC·뉴욕멜론 은행을 통해 달러로 결제됐다.
심현섭은 유엔(2016년)과 미국(2023년)의 제재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2022년 UAE에서 추방돼 중국 단둥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현재로선 그를 체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WSJ은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심현섭의 활동에 대해 알지 못하며, 그에 대한 미 재무부의 일방적 제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WSJ에 보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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