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9월, 미국 1위 진통제인 타이레놀을 복용한 뒤 7명이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제조사 존슨앤드존슨의 대응은 신속했다. 제임스 버크 최고경영자(CEO)는 즉시 소비자들에게 타이레놀 복용을 중단하도록 알리고 정보 공개와 소통에 앞장섰다. 독극물은 소매 단계에서 유입돼 사실상 제조사 책임이 아니었지만 버크는 직접 TV에 출연해 자신의 책임을 강조했다. 타이레놀 3100만 병은 전량 회수됐다. 4년 뒤 유사 사건이 재발하자 버크는 아예 캡슐 판매를 영구 중단하고 패키징을 전면 쇄신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CEO의 공개 사과는 당시 경영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진정한 사과와 신속·투명한 정보 전달, 책임 있는 후속 조치에 소비자 신뢰는 금세 회복됐다. 기업 존립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든 버크의 대응은 오늘날까지도 경영 위기 관리의 ‘교과서’로 회자된다.
■기업 경영에서 사고는 피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사후 대응이다. 위기의 순간에 CEO 리더십이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경영자의 판단 착오가 회사에 두고두고 ‘낙인’을 남기기도 한다. 버크 이후 부쩍 늘어난 CEO의 공개 사과도 진정성과 타이밍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태에 대해 사과하던 에너지 회사 BP의 토니 헤이워드 CEO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경솔한 발언으로 질타를 받았다. 2018년 페이스북의 사용자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의 늑장 사과는 사건 은폐 의혹과 맞물려 도마 위에 올랐다.
■28일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사과문을 냈다. 3300만 명이 넘는 고객 개인 정보가 털린 지 약 한 달 만이다. 김 의장은 ‘사과’라는 말을 8차례나 반복했지만 사태를 축소하려는 기존 입장은 여전했다. 30·31일 국회 청문회에도 불출석 입장을 고수했다. 29일 회사가 발표한 1조 6850억 원 규모의 보상안은 소비자를 생각하기보다는 ‘마케팅’ 성격이 짙어 보인다. ‘고객 신뢰가 존재 이유’라는 쿠팡의 무너진 신뢰 회복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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