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정점, 설원을 가르는 스키어들의 모습은 마치 눈 위를 미끄러지는 한 편의 우아한 춤사위와 같다. 초보 시절, 넘어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두 스키 앞코를 모아 ‘A자를 그리던(웨지턴)’ 긴장의 시간이 지나면, 모든 스키어는 하나의 로망에 도달한다. 바로 두 스키를 나란히 정렬해 11자로 설원을 시원하게 가르는 ‘패러렐 턴(Parallel Turn)’의 세계다.
패러렐 턴은 단순히 기술의 진보를 넘어, 스키가 주는 진짜 ‘자유’를 맛보는 관문이다. 안쪽 스키에 실렸던 과도한 힘을 빼고, 양발을 11자로 나란히 두는 순간, 저항은 사라지고 속도와 리듬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 기술의 핵심은 역설적이게도 ‘비움’과 ‘기다림’에 있다. A자 형태에서는 힘으로 스키를 밀어 방향을 틀었다면, 패러렐은 골반의 무게 중심을 아래쪽 발(다운힐 쪽)에 지그시 얹어두고 스키가 스스로 회전하기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때 용기를 내어 상체를 폴라인(fall line:스키를 놓아두면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가장 가파른 방향)으로 던져줄 때, 스키는 비로소 ‘에지’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며 눈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 있다. 처음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넘어지지 않으려 ‘A자’처럼 잔뜩 힘을 주고 세상을 버텼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삶의 요령을 터득하면, 이제는 억지로 밀어 붙이는 힘을 빼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11자의 여유’가 필요해진다.
과도한 긴장을 버리고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할 때를 아는 것, 그것이 패러렐 턴의 묘미이자 인생의 지혜다.
패러렐 턴의 진정한 완성은 양발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하체의 리듬을 상체로 전달하지 않는 ‘독립성’에 있다.
상체는 고요하게 슬로프 아래를 주시하고 하체만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 스키어는 비로소 설면과의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는 주변의 소란함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은 채 자기 길을 가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속도가 무서워 몸을 뒤로 빼는 순간 스키는 통제 불능에 빠지지만, 오히려 경사면을 향해 몸을 던질 때 안정감을 얻는다는 사실은 인생의 큰 교훈이다.
두 스키 사이의 좁은 간격은 단절이 아닌 협력이며, 그 평행의 미학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중력을 거스르는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카로운 에지에 몸을 맡기는 용기만이 설원 위의 진정한 성취감을 느낀다.
물론 11자로 발을 모으는 순간, 속도가 붙는 두려움에 다시 A자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찰나의 공포를 이겨내고 스키의 평행을 유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산바람의 상쾌함과 설원의 고요함을 온전히 만끽하게 된다.
2026년의 이 겨울, 가까운 스키장을 찾아 쌓인 눈 위에 자신만의 아름다운 평행선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두 발이 나란해지는 그 순간, 당신의 겨울은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부드러우며,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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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의/미동부한인스키협회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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