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는 꺼졌다. 그러나 추억은 꺼질 수 없다. 올림픽이 끝나고나면 매번 그렇듯이 이번에도 성화가 꺼진 뒤 더욱 총총하게 밝아오는 추억들이 있다. 승패를 떠난 진한 감동이 주류다. 그러나 한켠에는 씁쓸한 추태 또한 적이 많았다.
말라 러니안. 메달로만 친다면 그녀의 시드니 작황은 흉년 그 자체다. 금메달은 고사하고 동메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여자육상 1,500m에서 4분8초30으로 8등. 그러나 그녀는 그 어떤 금메달보다도 값진 인간승리 금메달 주인공으로 올림픽사의 빛나는 페이지를 장식했다. 법적으로 장님인 서른한살의 주부 러니안(오리건주 유진)이 육상강국 미국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선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축구 등 스포츠라면 뭐든지 좋아했던 10대때 앓은 괴질로 매일 얼굴을 맞대는 코치 얼굴조차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 99년 팬암게임때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코치를 찾아가다 스탠드에 부닥쳐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눈 대신 눈치’로 달리며 인간승리 드라마를 써온 그녀는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각국 건각들의 불꽃튀는 몸싸움·자리싸움을 이겨내고 예선·준결승 고비를 넘기고 결승 레이스까지 펼쳤다. 뿐만 아니라 결승도중 다른 선수와 충돌해 넘어진 메달기대주 수지 페이버 헤밀턴이 겨우 완주한 뒤 쓰러지자 다가가 정성스레 부축하는 등 따뜻한 동료애를 보여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룰란 가드너. 와이오밍주 애프튼의 가족목장에서 소를 키우는 스물아홉 새신랑 가드너가 13년 무패를 자랑하던 레슬링 황제 알렉산더 카렐린(러시아)을 무너뜨릴 것으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시드니행 자체도 의외였다. 다른 선수가 있었으나 그동안 가렐린에게 단 1점도 못 뺏은 터여서 어차피 지느니 대항마를 바꿔보자는 미 레슬링협회의 계산에서 선택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레코로만형 무제한급 4연패를 눈앞에 둔 시베리아 불곰 카렐린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뒤척거리다 스스로 무너지다니. 스포츠계와 언론계는 이번 대회 ‘가장 큰 사고’를 친 가드너에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과 명예가 쏟아질 것인지 헤아려보느라 분준하다. 그러나 가드너는 ‘소 치는 젊은이’로 되돌아간다는 계획이다. 아내 스테이시와 같이 받게 된 교사자격증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의 방어전 따위에도 아직은 관심이 없다. "내 진정한 목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돈같은 게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잖는가. 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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