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에 들어보는 이수영씨 가족스토리
▶ 9년전 생계터전 스왑밋 잃고 연이어 터진 지진 시련속에서도 밝게자란 남매, 되찾은 웃음
4·29폭동 피해자 이수영(51)·영옥(43)씨 부부는 9년 전 그 날의 기억을 잊었다.
다가올 앞날의 희망으로 지나간 시련의 아픔은 벌써 용서와 화해의 마음속에 묻어버렸다. 폭동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었고 노스리지 지진으로 슬픔을 곱씹었지만 밝고 곧게 자라나는 딸 하나(20·UCLA 경제학과 2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삶의 의욕을 다졌다.
좌절 속에 살아온 날 보다 딸과 함께 희망을 키우며 살아갈 앞날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씨 부부는 폭동 당시 크렌셔와 마틴 루터 킹 블러버드에 있는 스와밋에서 4년째 꾸려오던 가방가게와 의류점을 폭도들의 방화와 약탈로 모두 날렸다. 이웃 흑인상인의 피신하라는 권유에 뒤도 못 돌아보고 뒷골목으로 차를 몰아 광란의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15년 이민생활의 모든 것이 담겨있던 가게를 잃어버린 충격은 컸다. 어머니 날 대목을 앞두고 한꺼번에 물건을 사들였던 터라 주머니에 남은 몇십 달러가 전 재산이었다. 땀흘려 장만한 로랜하이츠 집은 은행에 차압당했고 졸지에 친지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됐다. 울고 주저앉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신앙에 의지하며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던 이들에게 또 다시 시련이 닥쳤다. 친구소개로 목이 좋은 샤핑몰을 골라 장사를 다시 시작했지만 노스리지 지진때 천정의 스프링쿨러가 터지면서 매장에 쌓아놓은 물건들이 모두 물에 젖어 못쓰게 된 것이다.
이씨는 "폭동과 지진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어른은 물론이고 하나와 아들 에릭이 받은 정신적 상처도 깊었다"며 "물질은 노력하면 되찾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늘 용서하고 관용하는 마음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부인 영옥씨는 "하나는 힘든 상황 속에도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동생까지 잘 봐주는 엄마의 내조자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면서 "하나가 없었다면 재기도, 밝은 앞날도 꿈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동 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컸던지 ‘그 당시 기억이 나느냐’는 질문에 금방 울음을 터뜨린 하나양은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않아도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했고 슬퍼하는 부모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변호사나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인 하나양은 "물질적 풍요함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폭동으로 인해 배웠다"며 "모든 것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주저 없이 도와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갖는다면 폭동과 같은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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