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화나에서의 생활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매일 12시간 넘게 일해야 했기 때문에 몸은 고달팠지만 수입은 숙식을 해결하고도 어느 정도 남을 정도였다.
티화나 생활이 석달이 가까워 올 무렵, 김씨는 멕시코에 들어올 때 사용했던 한국여권을 버리고 다른 여권(김씨는 그 여권이 어느나라 것인지 정확히 기억못함)을 준비하는등 최종 목적지 미국에 들어갈 준비에 들어갔다. 마침내 4월6일 김씨는 눈앞에 보이는 ‘자유와 풍요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오타이메사 국경검문소로 향했다.
김씨의 여권이 미 이민국 검사관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위조여권임을 발견한 이민국 직원은 조사를 벌인 뒤 김씨를 오타이메사 여성구치소에 수감시켰다. 당시 순간에 대해 김씨는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여성 범법자들이 수감돼 있는 이곳에서 김씨는 역시 밀입국을 하려다 체포된 젊은 한국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말을 나눌 기회는 별로 없었다. 대신 히스패닉 여성들과는 손짓,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며 스패니시를 조금 배울 수 있었고 북한에서 즐겨 부르던 ‘대동강 실버들’을 이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수감된지 10여일이 지났을까 누가 자신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면회장으로 나갔다. 인권단체의 변호사와 샌디에고 카운티의 유일한 한국어 법정통역관 한상희씨(24)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수감자들의 서류를 검토하다가 국적이 ‘북한’으로 기재된 김씨를 발견, 찾아온 것이었다. 변호사와 한씨는 1시간에 걸친 첫 대면에서 김씨의 사정을 들은 뒤 도움을 약속했고 특히 한씨는 자신이 보호자가 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한 김씨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5월8일 오후 7시40분. 김씨는 LA로 향하는 이민국 버스에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오르고 있었다. "정말 이제 추방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오타이메사를 출발한 버스는 40여분을 달려 샌디에고 다운타운 연방법원앞에 멈춰섰다. 그때 옆에 있던 한 히스패닉 수감자가 고개를 떨구고 있던 김씨의 어깨를 치며 "밖에 한국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소리쳤다. 희미한 불빛 아래로 3주전 만났던 한씨가 부모와 함께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가석방 될 수 있다는 얘기는 변호사를 통해 들었지만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여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차문이 열리고 교도관이 김씨에게 내릴 것을 알렸고 김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씨를 끌어 안으며 "고맙다"라는 인사를 연발했다. 꺼져가던 희망의 불꽃이 다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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