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아일랜드의 이병용 화백이 급서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사망을 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이병용화백, 하와이에 정착해 산 지는 10년도 되지 않지만 외지인으로 이병용화백처럼 하와이에 깊은 발자국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의 선이 굵으면서도 열정적인 삶은 오히려 그의 현실을 숨가쁘게 몰고 갔지만 낮에는 생강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로, 밤에는 어둠을 지새워가며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로, 또 이민선조를 기리기위해 빅아일랜드 힐로에 한인공동묘역을 조성하고 이민조상기념비등을 세우는 커뮤니티 활동가로, 그의 족적은 어느 한부분도 소홀히 평가될 곳이 없다.
그가 발을 디뎠던 모든 것, 하나하나가 거의 철저했기 때문에 그의 급서는 더욱 안타깝다.
이 시점에서 그의 타계는 하와이 한인사회로서는 너무나 큰 손실이다.
본격적인 이민백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그의 열정과 그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병용화백은 참으로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지난해 11월 마우이 문화예술회관에서 초대전 개막식이 열리던날 ‘꼭 참석해달라’며 비행기표까지 사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카훌루이 공항까지 그 바쁜 와중에 마중을 나왔었다.
그리고 개막리셉션이 성황리에 끝난뒤에는 타지에서 그의 전시회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오늘 하룻밤만이라도 자고 가라’고 그토록 성화였었다.
그것을 끝내 물리치고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인미술계를 대표하는 예술가중의 한 명으로 그는 하와이 로컬주류화단에서도 미술평론계의 주목을 모아 마우이초대전뿐 아니라 오아후의 호놀룰루아카데미오브아트에서도 주정부 후원으로 개인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당시 그의 전시회 주제는 무겁고 장중한 ‘묘비’(Tombstone)였는데 지난해 마우이 초대전에서의 주제는 밝고 화창한 세계를 지향하는 ‘모퉁이돌’(Cornerstone)로 정신적 변모를 보였었다.
최근 독실한 기독교의 세계에 접어들었던 그는 마우이에서 만나 인터뷰를 할 당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희미하게 웃었었는데 이렇듯 갑자기 사라져버리다니 ‘인명은 재천인가’하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오직 본토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어린 딸 한명을 슬하에 두고있는 그의 빈소는 빅아일랜드 힐로 한인기독교회에 차려져 문상객들을 받고 있다고 한다.
힐로에 가족이 없는 탓에 그가 다니던 교회에 이병용화백의 빈소를 차렸다는 빅아일랜드 황인완한인회장의 전언인데 빅아일랜드 호놀룰루 할것없이 그의 비보를 들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슬픔에 잠겨있다.
한인회 관계자들을 비롯한 현지 한인동포들이 ‘상주’(喪主)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빈소를 지키고 있고 호놀룰루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힐로로 향하고있다.
현지 한인사회에서는 그의 주검을,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한인이민조상 기념비를 건립했던 ‘알라이 공동묘지 한인묘역’에 묻을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던데....’
하와이를 그토록 사랑하고 열정을 다바쳤던 이병용화백의 영혼도 이승에서의 슬픔과 고달픔은 다 털어버리고 별이 되어 하와이 하늘위에 떠있게 될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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