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놀라울 만큼 닮은 궤적을 남긴다. 19세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혁명의 파고를 타고 등장해 스스로 황제의 관을 썼다. 20세기 중앙아프리카의 장 베델 보카사는 그런 나폴레옹을 흉내 내며 왕좌에 올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권력의 정점에서 ‘국가’라는 공적 가치를 ‘자신’이라는 사적 욕망으로 치환했다는 점이며, 그 끝은 예외 없이 비참한 몰락이었다.
21세기 민주주의의 보루라 자부하던 미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이 섬뜩한 역사적 기억에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단순한 정치적 스타일의 파격을 넘어, 공적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공항(도널드 트럼프 국제공항)과 도로(트럼프 블러버드), 문화시설(트럼프-케네디 센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기념관에 금빛 동상을 세우며, 군사 퍼레이드와 같은 상징 정치를 강화하고, 건국 250주년 기념 지폐에 자신의 서명을 새기겠다는 발상은 민주 공화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제군주적 발상이다. 이는 권력이란 시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통치 방식의 질적 변화다. 인사권을 도구 삼아 충성 경쟁을 유도하고, 사법부의 판단과 제도적 견제를 ‘적폐’나 ‘방해’로 규정하며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등 전형적인 권위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대외정책에서도 임기 초반 내세웠던 이른바 ‘돈러주의’식 고립주의 기조에서 벗어나, 이스라엘과의 공조 속에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아니라 ‘트럼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사적 집착에 가깝다. 혹시라도 트럼프가 ‘위대한 미국 제국’ 의 황제가 되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법 위에 군림하려는 유혹과 국가 시스템을 개인 브랜드로 전락시키려는 충동은 민주주의를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는 독소다. 이러한 폭주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노 킹스(No Kings)’ 시위는 미국 민주주의의 자정 작용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비명이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미국에 왕은 없다”고 외치는 것은, 특정 정책에 대한 불만을 넘어 건국 이래 이어져 온 공화주의 정신에 대한 집단적 확인이다. 권력은 총구와 금칠한 동상이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준엄한 경고다.
존 브레넌 전 CIA 국장은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의 직무 수행 능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 수정헌법 제25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수정헌법 25조는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부통령과 내각 과반의 찬성으로 대통령을 해임할 수 있는 규정이다. 실제 적용 여부와는 별개로, 이 같은 발언 자체가 현재의 위기 인식을 방증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입법, 사법, 행정이 서로를 감시하며 권력의 비대를 막는 이 정교한 장치가 지도자의 ‘독단’에 의해 마비되는 순간, 국가는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변덕에 좌우되는 난파선으로 전락한다. 지금 미국이 직면한 위기는 한 정치인의 기행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연약한 유리그릇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명사적 경고다.
나폴레옹도, 보카사도 스스로를 역사 위에 신화로 세우려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신화가 아닌 ‘오만의 대가’를 치른 교훈으로 기록했다. 한국의 근현대사 역시 권력의 사유화가 어떤 비극을 부르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에 대한 집착 끝에 감행했던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선택과 그에 따른 준엄한 법적 심판은, 권력을 개인의 의지로 휘두르려 할 때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11월 미 전역에서 실시되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미국 시민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강한 지도자’라는 허상에 속아 왕을 모실 것인가, 아니면 ‘강한 제도’를 지켜내어 시민의 권리를 보전할 것인가.
왕을 원하지 않는다면, 시민은 깨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시민이며,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시민은 결국 스스로 왕을 섬기는 신민으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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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부국장대우ㆍ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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