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책 한 권을 받았다. 가난하고 억울한 서민 대상 무료 법률구조 기관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원장 양정자 박사가 펴 낸 ‘남자가 변해야 남자가 산다’였다.
그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창립한 고 이태영 박사의 수제자로 ‘소외받고 고통받는 여성과 이웃을 돕는다’는 상담소의 설립정신 계승에 무려 35년을 바친 것을 익히 알기에 받자마자 책을 펴 들었다.
특히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은 현재 한인가정상담소와 오렌지카운티 가정법률상담소가 83년 LA에 처음 개설될 때 그가 1년 넘게 이곳에서 직접 씨앗을 뿌리고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상담사례집과는 달리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 당한 남편측의 하소연과 고발이 주축이었다. 남편들은"비정상적 아내를 용서하고 참아줬는데 오히려 이혼요구라니..."하고 격노하고 있었다. 그들 주장대로라면‘입이 석자라도 말 못할 못된 여자’인 아내들의 정반대 주장도 함께 펼쳐졌다. 아내는 "습관같은 남편의 폭행이나 철면피 행위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부모의 주장과 판이한 자녀들의 주장이 함께 등장한 것도 이채롭다.
수년 혹은 수십년을 함께 살았건만 이들은 마치 타인처럼 같은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었다. 동상이몽의 결과가 이렇게도 깊은 골을 만들 수 있을까, 충격이었다.
이 책은 서로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은 채 오해와 미움, 원망을 내면에만 쌓는다면 종국에는 전 가족이 철저히 파괴됨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먼저, 많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 자신이다.
이를 모를 사람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 털어놓기에 서투른 한인 1세들은 달팽이같은 큰 짐을 혼자 지고 허덕인다. 하물며 먹고살기 숨가쁜 미국에서랴. 그래서 눈에 보이는 한인사회 가정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나마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를 같이 들어주는 역할이라도 한다”며 18년전 생긴 한인 가정 상담소는 결과적으로 건강한 한인가정이나 사회 만들기에 큰 몫을 했다.
한국보다 더 복잡해진 가정문제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한인들이 정신적 짐을 덜고 자신의 입장에만 집착하여 지나쳤던 상대방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되돌아 보며 꼬였던 매듭을 풀었다.
초창기 온갖 어려움 끝에 틀이 잡힌 한인가정상담소를 그래서 많은 한인들이 대견하게 보고 있었다. 몸으로 때우고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운영하던 1세들로부터 운영의 핵이 1.5세나 2세로 넘어가자 정부지원금도 많이 따내고 전문인력을 영입, 서비스영역이 확대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런 한인가정상담소가 갑자기 한인청소년 회관의 상담프로그램과 통합한다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통합의 요점은 ‘상담만 받을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다.
통합추진측은 한인가정상담소가 보통 상담소가 아닌 언어나 문화의 이방지대에 서 있는 한인1세들에게 꼭 필요한 단체임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하긴 미국에서 낳거나 대부분의 삶을 이곳서 산 이들에게는 미국에 흔한 무료상담기관을 이용 못하는 한인 1세가 진심으로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재정문제와 합리성을 들어 청소년회관과의 합병을 찬성하는 1.5세 중심의 현재 한인가정상담소 이사진. 또‘청소년 회관과 가정상담소의 역할과 기능은 전혀 다르다’며 반발하는 1세 중심의 창립멤버들.
이들은 동상이몽 상태로 오래 살다 이혼 법정에 들어 선 부부처럼 보인다. 이제서야 매듭을 풀어보려 하지만 입장차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아 양쪽이 다 어려워 한다. 진작 눈치 채고서도 방치해 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다. 겉으로는 멀쩡했으나 오랜 대화단절로 만신창이가 된 부부 형국은 앞으로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양정자박사가 주장하는 ‘남자가 변해야 남자가 산다’는 말처럼 양측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선의의 합력을 끌어낼 수 없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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