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경주선수 아내들, 경찰, 소방관 가족 흡사
카레이서 존과 그의 아내 낸시 안드레티는 어린 세 자녀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드리는 예배는 여느 예배와는 사뭇 다르다. 예배당은 차고를 개조한 간이시설이고,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레이스카 엔진소리가 찬송을 방해한다. 또, 설교자는 기도에서 ‘안전’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한다.
잠시 후, 좌석에 앉아 있는 예배자들은 미시건 인터네셔널 스피드웨이를 시속 170마일로 질주해야 한다. 그와 함께, 낸시를 포함한 카레이서의 아내들은 환호하고 염려하고 기도하게 된다.
최근들어 자동차경주 업계는 전반적으로 호황기를 맞고 있다.
내스카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TV 전파를 많이 타고 있으며, 팬들의 저변도 날이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자동차경주의 황제 데일 언하트가 사망한 이후, 윈스톤컵 스피드웨이는 그야말로 순회 장례식장이 되었다. 지난 9개월새 언하트를 비롯, 네 명의 레이서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레이싱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심지어, 죽은 데일의 아들 언하트 주니어가 데이토나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도 장내에 우울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또, 얼마 전 내스카가 데일 언하트의 사인을 공식발표한 후부터는 카레이싱 안전문제가 다시 한 번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같은 상황전개 속에 윈스톤컵 카레이서 부인들은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한다. 이들의 남편들은 경찰, 우주비행사, 또는 전방군인보다 더 큰 위험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특이한 점은 다른 부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남편이 목숨을 걸고 있는 현장 앞자리에 앉아, TV 카메라를 의식하며 웃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광란의 질주: 내스카의 역사’의 저자 조 멘저는 이렇게 평한다.
"카레이서 아내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수시로 극복하며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토요일 오후, 낸시는 이동주택인 모터코치에서 가족의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걱정하는 기색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세 자녀는 부엌칸 테이블에서 유모와 함께 놀고 있다.
낸시는 어려서부터 인디 500 레이스트랙 인근에서 성장했으나, 카레이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존 안드레티를 만나면서 그녀의 인생도 바뀌게 된다. 존은 유명한 레이싱 집안 출신이었다.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삼촌 마리오, 사촌 마이클이 모두가 세계적인 레이서였다.
존과 결혼하지 어언 14년, 낸시는 전형적인 내스카 집안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연중 30번이상은 주말마다 자가용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카레이싱이 열리는 목적지로 날아간다. 현지에 도착하면 카레이서 가족들이 지내는 모터코치 촌으로 찾아간다.
카레이서 가족의 생활은 어떻게 보면 객지 야외생활이지만, 지내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연소득이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일류 레이서들은 모두가 고급 캠핑카를 소유하고 있다. 길이 42피트인 낸시의 캠핑카도 시가 22만 5,000달러를 호가한다.
낸시는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그 지역에서 자녀들을 돌보며 살림을 꾸린다.
코치 안에는 42인치 액정 플라즈마 TV가 설치되어 있어서 경주코스에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낸시는 레이스카가 벽에 부딪혀 불길에 휩싸일 때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스피드웨이에서 사고는 시끄러운 굉음만큼이나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남편 존은 지금까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존은 이날까지 갈비뼈 몇대가 부러져 수술받은 것외에는 치명적인 사고를 한번도 당하지 않았다. 또한, 낸시는 상존하는 위험에 둔감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귀는 레이서들의 육성이 직접 전해지는 라디오에 쏠려있다.
존은 레이서로서뿐 아니라 가정생활에서도 위험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왔다. 역시 카레이서였던 그의 아버지 앨도는 1969년,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후 은퇴했다. 또, 지난 5월에는 절친한 팀동료 레이서 아담 페티가 사고로 사망했다.
페티가 죽은 후, 존의 어린 자녀들도 레이서들이 처한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아빠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 하다. 자녀들은 아빠가 레이싱을 하는 동안, 다른 레이서 자녀들과 함께 성경공부반에 참여한다.
아이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레이싱카 굉음소리를 들으며, TV화면을 통해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을 시청중이다. 그러나, 갑자기 차량소음이 잠잠해지면 아이들도 사고가 났다는 것을 직감한다.
성경공부반 선생은 아이들이 레이싱에 신경쓰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쓴다. 그래서, 주로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레이서들의 안전과 무사한 경기종료를 위해 기도하도록 인도한다.
얼마 전 일진이 좋지 않았던 날.
존 안드레티가 연습도중 레이스카가 벽에 부딪혀 대파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순간, 낸시는 라디오를 통해 "젠장, 믿을 수가 없네"라고 외치는 존의 화난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낸시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남편이 안전하다고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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