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를 키우며
▶ 박진원<자영업, 부에나팍>
미국에 이민와서 어려운 살림 가운데도 귀여운 딸을 얻었다. 예쁜 딸은 볼적마다 하루의 피곤함을 잊곤했다. 딸이 어렸을 때 병에라도 걸리면 한숨도 못자고 밤새도록 업고 지냈으며 밤중에 아기침대에서 울어대면 피곤한 아내가 깰새라 내가 먼저 일어나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곤 했다.
너무 귀여워서 아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안고 있으니까 옆의 사람이 “당신만 애 키우느냐” 고 핀잔을 한 적도 있다. 언젠가 옆집에 딸을 맡겼는데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딸이 없어져 5시간정도 가게문을 걸어 잠그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온 동네를 찾아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우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그 딸이 이제 다 자라서 대학에 들어갔다. 집을 떠난 딸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하고 죄지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생활에 여유가 없어 딸을 데리고 남들처럼 손잡고 놀러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유스럽게 풀어놓지도 않았다. 밤 9시 넘어서 친구한테 오는 전화 는 못받게 했고 밤 10시전에는 꼭 귀가하게 하며 울타리 쳐서 사춘기에 넘어지지 않도록 늘 지켜보았다.
충분히 용돈을 주지 않으니까 용돈이 필요해서 11학년때 저녁 일을 하고는 일 끝나고 돌아와 힘들다고 방에 쓰러질 땐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미리 좌절감과 고통을 맛보게 해서 장차 살아가는 동안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훈련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내 마음은 슬프고 눈물이 쏟아졌다.
드디어 딸이 대학에 합격됐다. 기숙사에 들어갈 날이 얼마 안남았던 어느날 마음이 착잡했던지 밤 12시30분에 내방을 노크했다. 그러더니 새벽 1시30분까지 울면서 내게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내게 서운했던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남동생 캠프에는 따라가 하루저녁 자고 오면서 자기를 위해서는 운동시합때도 학교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너무 슬프고 섭섭했다는 것이었다. 딸의 졸업식에는 아내만 참석하고 나는 그 시각에 가게 물건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잔뜩 신경을 쓰느라 참석하지 못했었다. 아빠가 졸업식 안 간것이 그렇게 슬픈 일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꼭 참석을 했을텐데, 욕심 때문에 딸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말았다.
대학 가기전 자녀와 부모가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를 풀고 관계를 정리하고 떠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느껴진다.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지난 18년동안 딸을 키우면서 튼튼한 타이어처럼 사회를 향하여 달릴 수 있도록 온갖 정성과 관심을 쏟아부었다. 이제 딸이 푸른 꿈을 향하여 힘차게 달릴 것을 그려보며 크나큰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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