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으로 보면 한국사람들은 감정의 극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주 기쁘거나 아주 슬프거나,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쁘거나 하는 감정의 양극 사이에 놓인 공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감정의 양극단을 처음 목격한 것은 친구와 음식점에 함께 가면서였다. 친구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하였다. 그는 식탁 앞에 앉으면서 "배가 고프다" 또는 "배가 아주 고프다"라고 표현하는 대신에 "배가 고파서 죽겠다"라고 표현하였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잠시 후에 "배가 불러서 죽겠다"라고 하면서 식탁에서 일어났다.
한국사람들의 대화를 귀담아 듣기 시작하면서 "죽겠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았다. 그냥 피곤한 것이 아니라 "피곤해서 죽겠다", 시험이 어렵다가 아니라 "어려워서 죽겠다" 하면서 ‘죽겠다’라는 말로 극치의 감정으로 표현하였다.
짙은 감정을 ‘죽음’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배가 너무 고파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을 테이고, 너무 피곤하여 죽을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가 자기 아들을 보면서 "예뻐서 죽겠다"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한 표현이다.
’죽겠다’라는 말은 비공식적으로 한국말의 문법상 극치를 구사하는 형용사로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하여 본다. 예를 들어 영어로 ‘cute, cuter, cutest’라는 비교형용사를 한국말로 ‘예쁘다, 더 예쁘다, 제일 예쁘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말에는 영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 단계 더 강한 표현이 있다. "예뻐서 죽겠다"(So cute I’m going to die)라는 표현이다.
죽음(death)과 살해(killing)라는 극단적인 말이 한국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본래의 의미와 달리 사용되는 것을 본다. 예를 들어 엄마가 공부하지 않는 아들에게 "네가 공부를 안 해서 내가 죽겠다" "네가 하버드에 입학하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안다(나의 아들이 자기 엄마가 하였던 이 말로 인해서 얼마나 분발하여 공부하였는지 궁금하다).
화가 났을 때 상대에게 "네가 그렇게 하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한국여자가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조금이나마 그녀의 기분을 전환시켰던 말이 "내가 그 녀석을 죽여버리겠다"라는 그녀의 동생의 말이었다 한다. 물론 이 말은 해석이 필요한 말이다. 그 집에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실히 보고한다.
마치 천의 짜임새처럼 ‘죽겠다’라는 말은 한국말 속에서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중문화 속에서 살면서 말의 전후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죽겠다’라는 말을 영어로 직역하면 오해를 빚어낼 수 있다. 얼마전 한인학생이 "죽겠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여 자살 위험성이 있다고 오해를 받아 학생의 부모를 소환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겠다’라는 말의 사용법을 해명한 후에야 오해가 풀렸다 한다.
한번 상상하여 보라. 만약 "우리 아기가 예뻐서 죽겠다"라고 말하는 모든 한국엄마들을 자살 위험성이 있다고 주시한다면 아마 한국엄마들 절반 이상이 감금되어야 할 것이다.
’해석’과 ‘통역’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사람이 한국말을 해석하기는 어렵다. 말이 정확하게 통역이 되어졌다 할지라도 한국인의 정서를 모르면 말의 의미를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국말을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바로 내가 증인이다. 오랜 세월 한국말을 배우려고 애쓰면서 한국말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말이 어려워서 죽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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