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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희 편집위원>
몇달 전 LA타임스가 한국의 제왕절개 출산붐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나는 아기는 전체 신생아의 43%에 달한다며, 이 비율은 미국(20%)과 비교해 두배가 넘고,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높은 특이한 현상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기현상의 원인으로 우선 꼽히는 것은 의사들의 적극적인 권고이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수술을 통한 출산은 자연분만에 비해 시간이 짧고, 오진 소송에 걸릴 위험이 적은 반면 의료수가는 몇배로 높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제왕절개 출산을 부추기는 원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주’다. 극성 임산부들이 사주팔자 좋은 출생 일시를 미리 받아 그 시간에 맞춰서 수술로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높은 제왕절개 수술 비율이 지난 한달 사이에 갑자기 치솟았다고 한다. 새해가 되기 전에 미리 아기를 낳으려는 임산부들 때문이다. 2002년이 임오년(壬午年) 말띠해라는 사실이 그 이유이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이 마음에 걸려서, 분만 예정일이 가까운 임산부는 수술로 조기출산을 하고, 출산 계획을 세우던 부부는 딸 낳을까봐 임신을 기피한다는 소식이다. “미신이라 해도 나쁘다는 걸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가 배경 설명.
매년 한 동물이 그 해를 상징하는 띠가 되는 독특한 관습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중국 태곳적 씨족사회의 토템신앙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데 가부장적 사회의 소산인 만큼 여자가 강한 것과 연결 지어지면 어김없이 나쁜 쪽으로 해석된다.
‘기가 세다’‘남자 앞길 막는다’그러므로 ‘팔자가 드세다’는 꼬리표가 붙는데 대표적인 것이 호랑이띠, 용띠, 그리고 말띠. 이들 세띠의 해에는 딸 출산이 줄어서 남녀성비 불균형이 현격히 심해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2002년의 상징인 말은 우리 민족에게 신성한 존재로 받들어졌다. 좋은 예가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말. 신라의 시조 설화를 보면 백마가 큰 알을 품고 있다가 승천하고 나니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다.
말은 왕성한 에너지의 동물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 말띠 생은 체력이 강하고 통이 크며 큰 일을 성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 그 주인공이 남자일 경우에 한하고, 여자이면 이 모두가 팔자를 드세게 하는 요인이 될 뿐이라는 해석이다.
지금은 여성이 사회각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21세기이다. ‘기가 세다’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주관이 뚜렷하고 지도력이 있다’ 정도가 될 것같다. 이제 태어나는 딸들은 세계 대통령의 절반쯤이 여성인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이왕이면 기가 센 딸을 낳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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