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올드 타이머 이종선회계사가 지난 연말 58세에 짧은 생애를 마쳐 지인들은 한인사회에 유능한 전문인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시카고 한인 공인회계사 회장등을 역임하면서 국세청, 주세무국 노동청 관계등 전반적인 세무조사를 안내하는 세미나 개최, 기업 경영과 세금에 대한 글들을 신문에 기고하는등 한인사회에 전문지식 정착에 애썼다.
최고의 전문인이 되기 위해 듣고, 보고, 읽는데 부지런했던 고인은 1세로써 언어의 장벽과 상식을 연마하기 위해 영어사전 한장씩을 암기한후 씹어 삼키고 세법전문 잡지는 물론 내셔널 지오그라피등 다양한 잡지 10여권를 구독하면서 삶의 균형을 추구했다.
7년전부터 링컨우드 공인회계사 사무소에서 고인과 함께 일한 이우일, 이창호회계사는“ 고인은 가정, 생활, 직장등 모든면에서 모범을 보인 깔끔한 신사였다”고 말하고 전문가 후배들을 길러내기 위해 애쓴 멘토였다며 해결 답안을 가진 “워킹 딕션너리였다”고 아쉬워 했다.
특히 고인은 국세청, 주세무국 세일즈 택스 , 노동청 감사등에 대처하는 업무처리 능력이 뛰어나 IRA의 감사로 어려움을 당한 한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기관리, 고객관리에 철저했던 고인은 고객과의 대화 내용을 비즈니스 일기로 써놓아 10여년전의 고객이 다시 찾아와도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성실함으로 신뢰받는 회계사의 길을 걸었다.
노력해 얻은 결실을 남을 위해 사용할줄 알았던 이종선회계사는 일뿐 아니라 그림, 붓글씨, 클래식 음악에서 조예가 깊었다. 재불작가 이응로화백의 후예로 예술의 끼를 이어받은 고인의 집안에는 심신을 단련하며 그린 고인의 그림들이 빼곡이 걸려 있다. 파스텔, 묵화등... 예술가가 될 사람이 회계사가 되었다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자신을 끝없이 연마했던 고인은 고려대학 경제학과 출신으로 1968년 노스웨스턴 대학에 유학, MBA를 취득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그당시 한인으로는 드물게 미 항공사에 음식을 제공하는 회사에서 부사장까지 올라 초창기 이민자들에게 직업을 알선해 주었으며, 1973년 C.P.A자격을 취득한후 76년도부터 회계사로 일해 왔다. 1971년도 원혜자씨 결혼한 고인은 의사의 길을 걸으며, “자랑스런 아버지”라고 말하는 슬하의 리차드, 데이비드 두아들을 두었다.
김흥균기자 hk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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