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주본사 건물이 자리잡은 행콕팍은 전형적인 미국 부자동네이다. 조용하고 평온하기만 한 이 부촌이 몹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1948년, 두가지 사건이 원인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백인지역인 이곳에 흑인이 이사오려 한 일. 냇 킹 콜이라는 연예인이 행콕팍에 집을 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놀란 주민들은 흑인이 그 동네 집을 소유하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겠다고 탄원서를 돌리며 일대소동을 벌였다.
그해 10월 발생한 두 번째 사건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남편의 머리를 식칼로 23번이나 내리쳐 죽게한 사건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방이 15개가 되는 대저택의 젊은 부부였다는 사실, 아내가 남편을 죽인 방식이 너무도 끔찍했다는 사실등이 LA 전시민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건발생 직후 시민들의 동정은 당연히 남편, 제리 페레리에게로 쏠렸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가해자 베티가 사실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페레리 부부는 원래 동부 출신으로 베티 부모의 반대를 피해 LA로 도망와 살림을 차린 것이었다. 제리는 한마디로 부잣집 망나니였다. 부모가 돈을 대줘서 대저택을 사기는 했지만 가족의 생계 같은 건 관심도 없었다. 베티가 식당 웨이트레스를 하며 생활비를 버는 동안 그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여자들을 호리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던중 손찌검하는 버릇이 생기더니 횟수과 정도가 날로 심해졌다.“오늘은 이빨 안 부러지고, 눈두덩이 튀어나오지 않고, 생명 부지하며 하루를 보내게 해주세요”가 매일의 기도였다고 베티는 재판중 증언했다. 온갖 것이 다 폭행의 이유가 되었는데 한번은 제리가 자동차 수리비 100달러 대신 매카닉과 같이 잠을 자주라는 요구를 베티가 거절하자 얼굴을 때려서 고막이 터지기도 했다.
그 보다도 베티가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 같이 잠을 자는 일이었다. 사건이 터진 날 역시 제리가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베티가 막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격분한 제리가 베티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골방으로 끌고간후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자 집안일을 돕던 잡역부가 달려가 총을 쏘았다. 그래도 제리가 죽지 않자 베티가 식칼을 내리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남편은 ‘난폭한 괴물’이었다며 눈물로 증언하다 기절까지 한 베티에게 배심원들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미국에서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사회적 관심이 쏠린 초기 사건중의 하나이다.
지난 10여일 사이 남가주에서는 부부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다 한인 남성 2명이 생명을 잃었다. 가정폭력을 가정내의 개인사로 보는 시각은 이제 버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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