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진 가장 큰 본능은 살고자 하는 본능이다. 비행기나 등반 조난 사고를 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인간의 생명이란 이렇게 모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이에 못지 않은 엄숙한 진리다. 이 두 가지 진리를 떠나 인간과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얼마 전 한 부동산 브로커가 신문사로 전화를 해 양심선언을 했다. 브로커 일을 하면서 밥을 먹고살고 있지만 요즘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부동산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금기시 돼 있다. 당장 배신자로 찍혀 리스팅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해 살아남기 힘들다.
한인 언론과도 여러 번 인터뷰를 했다는 이 브로커는 "부동산 경기가 과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신문에 얘기할 때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런 이중적 행동을 하는 것은 자기뿐이 아니고 주위 동료들도 마찬가지며 심지어 일부 브로커는 남들보고는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갖고 있는 것까지 파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부동산 업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닷컴 열기가 하늘을 찌를 때 그 위험성을 경고한 증권사는 거의 없었다. 망할 때 같이 망하더라도 혼자 이단자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목을 걸지 않고는 하기 힘든 행동이다.
한때 미 7위의 기업이던 엔론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이 회사의 비리를 아는 간부와 감사관들 사이에 ‘침묵의 묵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의 묵계’는 모든 이익집단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LAPD 경관이 로드니 킹을 무차별로 개 패듯 팰 수 있었던 것도 아무리 동료 경관이 피의자를 때려도 말하지 않는다는 경찰끼리의 묵시적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검찰 집단이나 변호사 집단, 의사 집단, 기자 집단도 마찬가지다. 동료의 잘못에 토를 다는 인물은 기피 대상으로 찍혀 그 조직에서 발붙이기 힘들다. 조직에서 쫓겨나면 주위의 몰이해와 조소를 견뎌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인간이면 100에 99가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게 좋은 것’으로 그냥 넘어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라틴어에는 ‘사는 사람이 알아서 조심하라’(caveat emptor)는 속담이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직업 윤리나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자기의 밥줄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변치 않는 진리다. 주위의 감언이설에 솔깃하기 전 말하는 사람의 이해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 삶을 사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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