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미국에 와서 산 지가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습니다. 가방하나 달랑 들고 김포공항을 떠난 것이 어제 같은데 말입니다. 마흔다섯 적지않은 나이에 무슨 큰 꿈 이루겠다고 이민을 결심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힘겹고 어려웠던 초기 이민시절에는 실망과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 누가 나에게 “미국에 온것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노”라고 답할것입니다. 경제적인 기준으로는 별로 성공한 이민이었다고 할 수 없으나 아이들 남못지 않게 공부시켜 출가시키고 그런대로 자리 잡고 살게 되었으니 더 이상 무슨 욕심 있겠습니까.
K형, 시집간 딸이 고생을 덜 하려면 시가와 친정의 사이가 좋아야 한다지요. 양가의 관계가 불편할때 중간에 있는 딸(며느리)의 마음고생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러한 마음을 가진것이 어찌 나 한사람 뿐이겠습니까. 이곳 미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동포들은 나와 같은 심정으로 요사이 일고 있는 한미간의 불편한 관계를 바라 보고 있을 것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찌 사람과의 관계가 항상 좋은 때만 있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부사이에도 그럴진데 남남간에 더 나아가 나라와 나라사이에 말입니다. 아무리 굳게 맺은 조약서도 국익 앞에서는 어느날 한낱 휴지조각이 되고마는 냉엄한 정치세계에서 말입니다.
한미간의 혈맹관계가 결코 변치 않으리라고는 보지않으나 요즈음 고국에서 빠르게 팽배하는 반미감정에 대한 우리 미주동포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반미성향의 사람들이, 그리고 반미시위가 전에라고 없었겠습니까마는, 그때는 일부 운동권 학생들이나, 과격단체들의 소행이거니 치부했으나 이제는 일부 지도층 인사와 정치권 사람들까지 합세하고 있다니 정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시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의 외교정책 기조가 ‘반미친중’으로 기울고 있는것 같다”라고 쓴 어느 외국기자의 기사는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미국과 일본이 경기를 하면 일본을 응원하겠다”고 하는 것이 요즘, 일부이겠지만, 젊은이들의 분위기라니, 미국에 대한 정서가 이렇게 빨리 변하는가 싶어 걱정이 앞섭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선린으로 친하게 지내는것이야 나쁠것 없지만, 왜 그것이 ‘반미친중’이나 ‘반미친일’로 나타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K형, 지금 우리 동포들이 더욱 곤혹스러워 하는것은 한미간의 껄끄러운 관계로 일고 있는 반미감정 보다도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마저 싸잡아 매도하는 본국의 분위기입니다. 요사이 반미감정을 부추길만한 악재들이 계속 생기고 있으니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 없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사는 동포들마저 배신자로 몰아 부치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미주에 있는 수많은 교회나 다른 종교 단체에서 예배시마다 드리는 ‘조국을 위한 기도’는 하늘에 닿으리라 믿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들의 마음이 모국을 향한 짝사랑만 같아 씁쓸 합니다.
K형, 이곳에 살고 있는 동포들 (딸들)은 든든한 조국 (친정)이 있기에 이만큼 어깨를 펴고 살고 있답니다.
시가와의 사이가 좋아지고 친정집이 넉넉해질수록 시집살이 편해지듯 이곳의 동포들 또한 한미관계가 옛날처럼 복원되고 국내정치가 안정되어 나라살림이 넉넉해지면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겠지요.
오늘의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보고, 바로 대처하는 큰 정치와 국민 한사람 한사람 넓은 가슴으로 포용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자라는날 세계 열강과 당당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나의 조국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든 타국살이 하는 해외동포들을 따뜻이 맞아주며, 우리 동포 또한 기쁨으로 찾아가는 모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동철/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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