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시드니 포이티에를 위한 축제 같았다. 72세된 그가 명예상을 탄 데다 여우주연상을 탄 할리 베리가 수상소감에서 “시드니 포이티에는 나의 교과서였습니다. 그는 나에게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해 장내를 숙연케 했다. 눈물은 슬픔의 상징이지만 인간의 신체구조는 이상해서 너무 기뻐도 눈물이 나오는 법이다.
시드니 포이티에에 대한 칭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우주연상을 탄 덴젤 워싱턴도 “나는 40년 동안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시드니 포이티에를 향해 수상 트로피를 치켜드는 감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시드니 포이티에는 흑인 커뮤니티에 무엇을 남겼는가. 그는 왜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가.
원래 할리웃은 백인 세계, 그것도 백인 수퍼스타들을 탄생시키는 원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흑인은 처음부터 들러리였다. 영화에서도 하인 하녀 아니면 강도나 갱 청소부 등의 배역만 맡았다. 바보 같은 역할을 맡기면 사람이 우습게 보이게 마련이다. 그게 어디 영화뿐이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드니 포이티에는 흑인이 영화에서 우습고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단연 거부하고 나선 배우다. 흑인은 왜 주연을 못하느냐. 지성인 배역도 해낼 수 있다. 백인들이여! 피부 빛깔만 가지고 사람을 너무 우습게 여기지 말라. 그가 들고 나온 메시지는 대강 이런 내용이다. 시드니 이전에 흑인으로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온 해티 맥대니엘이 오스카 조연여우상을 받은 적이 있으나 그것도 하녀역을 훌륭히 해내 탄 것이었다. 그래서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주연상은 ‘백인 남우주연상’ ‘백인여우주연상’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시드니 포이티에가 63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그는 대담하게도 전부를 가지느냐, 전부를 잃느냐 게임을 택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만약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이 제외된다면 미 전국의 흑인 800만명이 보고 있던 TV를 걷어찰 것”이라고 폭탄발언을 했다. 당시 미국은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이 피크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시드니의 남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은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었으며 드디어 그는 꿈을 이루었다. 투쟁해서 오스카상을 탄 셈이다.
사람은 이름 없을 때 멸시 당하는 것보다 유명인사가 되었는데도 푸대접 당하는 것이 더 분한 법이다. 시드니가 오스카상을 받은 후 할리웃에서 받은 냉대는 한두 건이 아니었다. 오스카상 수상자는 출연료가 비싸다 하여 영화사에서 그를 피하거나 턱없는 낮은 출연료를 제시해 모욕감을 주었다. 이 모든 역경과 싸워가며 50년 동안 그가 출연한 영화는 53편이나 된다.
그는 흑인 커뮤니티가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 할리웃에 진출한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어려워할 때는 자신이 어떻게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었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시드니 포이티에는 흑인 커뮤니티에 돈을 도네이션한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준 것이다. 싸워서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 흑인도 위엄을 갖출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후배들을 키워야 먼 훗날 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할리웃의 흑인 프론티어다.
야구의 잭키 로빈슨, 테니스의 아더 애쉬, 성악의 마리안 앤더슨, 팝송의 해리 베라폰테, 그리고 영화의 시드니 포이티에는 단순한 스타가 아니다. 이들은 후손들에게 꿈을 심어준 멘터(정신적 스승)다. 커뮤니티가 성장하려면 물질적인 도네이션도 중요하지만 멘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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