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보도되는 신문을 통해 김활란 박사와 김성수 선생이 친일파에 속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가 김활란 선생을 처음 본 것은 개성에 있는 호수돈 여중 1년생 때였다. 강연 내용인즉 이화전문학교에 오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학교 다니는 것도 파격적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이화 전문에 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김 박사의 빙판에 옥 구르듯 하는 말솜씨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고 돌아서서 자리에 착석하실 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두루마기 차림의 김 박사가 분명히 여자인데 돌아서는 그 뒤 모습이 여자가 아닌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노소 간에 단발을 했건 숏컷을 했건 우스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여자가 뒷머리를 남자처럼 이발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이해는커녕 어찌나 망측하고 우스운지 나는 웃음을 참다 참다 폭발을 한 것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의자 밑으로 들어가 웃었다. 어찌나 웃었던지 배가 당기도록 웃었다. 백인 선교사이자 교장인 니클스에게 꾸중을 들었다. 내 일생에 이때처럼 크게 웃은 일은 없다.
나는 해방 전해에 일본에서 돌아와 해방이 되자 여권신장을 위해 지방 작은 정치조직에 참여하였다. 그때 그 단체장을 통해서 들은 김활란 박사의 활약상을 들었다.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활란 박사와 한국 단독정부 비화’라고 하겠다.
그때 한국에서 유엔에 파견한 분들이 많았겠지만 내가 들은 이름은 정일형 박사와 김활란 박사였다.
’… 김활란 박사의 그 유창한 영어와 (여성이라는 것도 감안해서) 그의 능란한 외교솜씨로 각 국 대사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등을 토닥토닥 치며 한 표를 부탁하는데… 그 효과야말로…’ 정일형 박사에 대해서도 그 간부는 칭찬을 했으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김활란 박사가 어떤 행위로 친일을 했는지는 모르나 그 분이 해방 후 한국에 기여한 공로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그 분이 여성 해방과 교육을 위해 헌신한 것을 잊을 수 없다.
일제 때 나 같은 하찮은 가정주부가 인구조사 나온 순사에게 말끝에 "성전이라고 다 이겨요?"했다가 고등계에 끌려가 혼났던 일을 생각하면서 식민지 시대에 이화여전을 이끌어 가신 그 분의 수고도 짐작이 간다.
박정희 정권이 김 박사의 이화여대 총장직을 박탈하자 너무나 낙심해 제명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마음 아파하는 여성이 나 하나일까. 속담에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것은 죄지만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처리하는 데는 (핥는) 공이 있다고 한다. 하물며 인간 세계에서 한 인물을 평할 때 그 공과 죄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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