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대통령 회고록에 아들문제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대통령이 아들을 구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아들(현철)에게 검찰의 조사를 받게 한데 이어 청문회까지 세우는 아버지의 심정은 고통 그 자체였다. 내가 끝내 아들을 청문회에 세우게 한 것은 야당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국민들의 뜻에도 부합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쓸쓸한 날들이 이어졌다. 나의 재임중 가장 괴롭고 고독한 시간들이었다.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가족들을 불러모아 대만의 장개석 총통 얘기를 빌어 엄격한 몸가짐을 당부했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들이 원망스럽다가도 아버지로서의 자책이 몰려오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집무를 하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갖 번민과 회한으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현철이의 등을 떠밀어서라도 진작 해외에 내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 우리 현실에서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입장은 많은 로비와 비난의 표적이 될 소지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몸가짐에 대해 각별히 조심하라고 늘 주의를 주었다. 미국의 헤리티지 연구소나 브루킹스 연구소 같은 곳에 미리 내보냈더라면 좋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이 글은 회고록에 실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토로한 것이라고 본다. 재작년 상도동 그의 자택에서 인터뷰했을 때 아들 문제에 이르자 그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인간입니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사람이에요. 자식을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 있겠소? 집 안사람(손명순 여사)은 속이 상해 밥도 안 먹고 기도로 매일 보내고 있지, 마산의 현철이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오지… 참으로 어렵습디다”
당시 현철씨를 구속하라고 건의한 참모가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은 “주변에서 현철이를 구속하라고 건의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대통령이 고독한 겁니다. 나 혼자 내려야 하는 일생일대의 결단이었습니다. 검찰총장(당시 김기수씨)도 현철이를 구속할 만한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꼭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었습니다”
누가 감히 대통령에게 “아들을 구속하십시오”하고 건의할 수 있을까. 대통령 자신이 아들을 구속시킬 생각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건의해오면 섭섭할 것이다. 또 참모 입장에서 보면 괘씸죄로 낙인찍히는 것보다는 입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으로 생각될 것이다.
현철씨 할아버지가 현철씨 구속에 너무 화가 나 김 전대통령을 꾸짖었다는 이야기가 나돈 적도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은 없고 할아버지가 안양교도소에 면회 왔다가 청와대에 들르지 않고 그냥 마산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섭섭함을 행동으로 표시했다는 뜻인 것 같았다.
대통령이 된 후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와 고통스러웠던 때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YS는 “현철이 구속 때가 청와대 생활에서 가장 괴로웠습니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내 생애 전체를 통해 가장 참담함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제일 보람을 느낀 것은 당선된 후 청와대에 들어가기까지의 석달 동안이었습니다. 이것저것 구상했는데 정말 보람 있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나서 YS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두고 보이소, 김대중씨 아들도 구속될 겁니다. 아들 가진 대통령은 큰 소리 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김대중 대통령)도 알게 될 겁니다.”
YS와의 2년 전 인터뷰를 리바이벌 하는 이유는 역사에서는 과거가 미래를 말하기 때문이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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