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년전 얘기다.
미국에 와서 제일먼저 붙잡은 것이 ‘데어리’라는 조그마한 업소였다. 우유를 주업종으로 식품과 잡화 등을 취급하는데 손님이 차를 탄 채 가게 앞에 와 서면 “뭘 도와 드릴까요?” 하고 주문을 받아 물건을 차에 실어주고 돈을 받는 조그마한 가게였다. 흑인동네 한복판에 있던 관계로 손님은 거의가 흑인이었다.
그곳에서 한 백인 신사와 알게 되었는데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수십채의 주택을 관리하며 지내는 팔자 좋은 사람이었다. 주택들이 우리 가게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집세를 걷을 때나 집수리를 할 때면 곧잘 나한테 들러 잡담을 하다가곤 하였다. 그 잡담 내용은 대개 흑인에 관한 흉이었다.
집세를 떼어먹고 도망가지를 않나 집을 망가트리지 않나 하며 흉볼거리가 하도 많아서 몇 시간을 계속해도 그칠줄 몰랐다.
이렇게 흉을 보다가도 흑인이 가게 앞에 차를 세우면 “하이” 하고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을뿐더러 주문한 물건을 차에 날라다 주면서 만면에 웃음을 띄고 천년지기처럼 날씨나 스포츠 또는 최근 있었던 화제 등 한참 말을 주고 받고는 손님이 가고 나면 나한테 돌아와서 다 마치지 못한 흉보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표리부동한 사람이 있나 하면서도 흑백갈등속에 살아가는 지혜의 소산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중 하루는 리커스토어를 경영하는 한인이 들렀는데 그는 “흑인동네에서 장사하자니 참 애로가 많지요?”라며 인사를 하고는 자기 가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흑인손님과의 괴로운 일들을 털어놓고 나서 “요즈음은 한시름 놓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한국에서 두 아들이 왔는데 그들이 모두 당수 유단자들이라 흑인들이 꼼짝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수로 다스리는 것이 제일이에요” 이렇게 결론지으며 득의만면 하였다.
4.29 폭동을 회상할 때는 나도 모르게 그 한인을 생각한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한국인은 직설적이고 속마음을 그대로 내보이는 민족이다.
폭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생각케 하는데 그중 하나는 앞서 말한 백인처럼 속은 어떻든 흑인에 대하여 웃음과 친절로 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허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미국에서 흑백갈등은 여전히 무거운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정성과 친절로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었을 때 민족간의 화합은 이루어 질 것이다. “온 천하를 다 주어도 사랑이 같이하지 아니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