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고들 한다. 무엇을 경고하거나 금지할 때 따라다니는 것이 빨강이니 친숙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차량들을 세우고 주위의 사람들을 움찔하게 하는 소방차가 빨강인 것은 당연하다. 차안에서나 거리에서의 느슨한 표정들을 일순간에 바꿔놓는 게 빨강의 메시지다.
화재경보기도 빨강이다. 자동차 문을 닫고 알람을 작동시키면 자그마한 빨간 불이 깜박거린다. 차량절도범이 넘보지 못하도록 빨강으로 한 것이다. 노변 주차금지 지역에는 빨간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신호등이 빨강으로 바뀌면 "에이" 하면서도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접근금지를 알리는 것도 빨강이다. 군사보호시설에는 "접근하면 발포한다"는 빨간 문구가 위압감을 준다. 고압선이나 프라이버시를 요하는 지역에서도 빨간색 구절이 주의를 환기시킨다. 위험을 막아준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내벽을 빨강으로 칠한 집을 찾기 힘든 것이다.
우리 몸에 고이 간직돼야 할 피가 밖으로 흘러나올 때 보이는 것이 빨강이니 편안함을 줄 리 없다. 동물애호가들이 캠페인을 벌일 때 들고 나오는 것이 피 흘리며 죽어 가는 동물의 모습이다. "빨강이 동물학대의 잔혹함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략에서다.
"별 생각 없이 나뭇가지를 꺾는 것은 나무의 즙이 빨강이 아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꺾은 나뭇가지에서 빨간 즙이 흘러 손에 묻기라도 하면 움찔하게 되고 함부로 그러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우리의 피가 빨강인 이상 빨간 색을 대할 때 마음이 곧추서는 것은 숙명적이랄 수도 있다. 몇 년 전 북한의 "피바다" 발언으로 한반도에 전운까지 감돌았던 것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을 "빨갱이"라고 부른 것도 경계의 대상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월드컵 대회로 빨강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의 스킨헤드들과 달리 질서 있는 응원에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붉은 악마’는 빨강의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빨간 색이 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빨강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바꾼 것은 틀림없다. ‘붉은 악마’가 뜨면서 모자, 티셔츠, 머리띠 등에도 빨간색 인기가 덩달아 치솟고 있단다.
이러다간 빨강이 화합과 웅비의 상징이 될지 모를 일이다. 월드컵 축제무드와 붉은 악마들 덕에 ‘빨강 북한’에 대한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가 적어도 인도주의 차원에서만은 ‘레드 러브’(Red Love)와 자리바꿈 했으면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