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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훈 편집위원>
지난 달 열린 한일 월드컵 대회는 한국의 이미지를 바꿔 놨다. 4강에 올랐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붉은 악마’의 응원 태도야말로 놀라웠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열렬하면서 질서정연하게 응원했음에도 기물파괴나 집단난동도 없었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쓰레기를 줍는 매너까지 보였다.
이에 대한 대다수의 반응은 “한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칭찬이었지만 일부에서는 “일사불란함이 지나쳐 섬뜩했다”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최근 들어 월드컵 열기가 지나치면 어떤 부작용을 낳는가 하는 사례들이 점차 눈에 띄고 있다. 한국의 한 언론인은 자기 칼럼에 ‘이젠 히딩크를 잊자’는 글을 썼다가 매국노로 성토되는 봉변을 당했다. LA에서도 한 문인이 ‘한국 월드컵 열기, 도가 지나치다’는 칼럼을 썼다가 네티즌 화살의 표적이 됐다.
다른 사람이 발표한 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회는 서로 다른 주장을 가진 사람이 토론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나갈 때 발전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터넷에 떠 있는 독자 반응의 절대 다수는 건전한 토론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상소리로 일관하거나 ‘한국의 월드컵 열기에 조금이라도 재를 뿌리는 자는 모두 역적’이라는 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가물에 콩 나듯 이 글에 동조하는 글을 올린 사람들은 ‘너도 역적’이라는 바가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하루에 수십 통씩 이런 인신 공격성 투고가 올라오자 이 문인 이름이 들어 있는 인터넷 사이트 관리자는 아예 문인 이름을 회원 명단에서 삭제하고 게시판 운영을 중단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온 한 한인은 “참석자중 한 명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욕하기에 ‘한국이 이런 점은 훌륭하지만 저런 문제점도 있다’고 지적했다가 ‘미국에서 온 주제에 뭘 안다고 떠드느냐’고 매도당했다”며 “한국 사람들은 더 이상 칭찬 이외에 다른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가장 정확한 관찰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평등을 세계사의 가장 큰 대세라 보고 평등주의가 심화될수록 다수의 횡포도 커질 것을 우려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이 한 국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익명의 그늘 속에서 추악한 언어 폭력을 휘두르면서 스스로 애국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쓰레기 청소를 잘 하는 나라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나라, 과연 어느 쪽이 진짜 선진국일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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