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 박봉현 편집위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화투치기에 푹 빠졌다. 이번 여름방학 때 처음 배운 화투치기라 처음엔 ‘약’이나 ‘단’ 없이 그냥 하더니, 놀이에 익숙해지면서 청단, 홍단, 초단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밋밋한지 이젠 비약, 풍약도 첨가했다.
’한국, 한국인’ 하면 ‘단조롭고 격식 까다로운 나라, 창의력 없는 사람들’로 여겼던 2세들인데 화투놀이에 몰입하면서, 그 안에 담긴 오밀조밀한 게임방식과 긴장감을 즐기면서 언제 그랬더냐 하는 태도다. "한국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이 있는 줄 몰랐다" "한국사람들 머리 참 좋다"며 싱글벙글하는 모습에 이들의 부모도 흐뭇하다고 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월드컵 이후 한국 전통에 대한 2세의 관심이 커진 것만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미국에 더 친숙하고 한국에 더 소원해지기 쉽다. 한글학교를 다닌 학생이라도 대개 3~4학년 때가 실력 면에서 ‘정상’이고 졸업이 다가오면 군기 빠진 제대 말년 병장처럼 공부를 대충 대충하고 부모들도 느슨해지게 마련이니 실력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게 보통이다.
고등학생들이 한국어를 잘 못하고 또래와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은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럽다. 모르긴 몰라도 자기들끼리 있을 때 한국어를 사용하는 2세 고교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게다. 영어에 서툰 부모나 1세와 대화할 때는 ‘정상참작용’으로 어눌한 한국어를 간간이 섞긴 하지만.
타운 내 윌셔가에 있는 옛 대우자동차 딜러(현재 스즈키 딜러) 앞에서 고교생으로 보이는 4~5명이 잠깐 길을 멈췄다. 한 명이 높은 톤으로 "야, 이 차 봐라, 멋있지" 하자 같이 있던 친구가 "정말 멋진데" 하며 맞장구치고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야 너희들도 이리 와서 이 차 좀 봐라" 하고 말했다. 이들은 쇼 룸에 있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보며 계속 한국어를 주고받았다.
물론 세련된 표현이 아니고 고상한 단어를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발음은 그야말로 영락없는 2세이거나 어릴 적 미국에 와 영어가 훨씬 편안한 10대들이었다. 그런데도 자기들끼리 영어로 말하지 않고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충분히 ‘작은 충격’이랄 수 있다. 월드컵 덕이 아닌가 싶다.
’4강 위업’ 달성으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 청소년들의 여름방학 모국방문이 지난해에 비해 20%나 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자녀들에게 한국을 느끼게 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다하다 지쳐 포기한 부모들도 적지 않다. 차제에 월드컵으로 달아올라 아직 가시지 않은 모국에의 관심을 뿌리교육으로 승화시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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