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들라면 첫 손에 꼽히는 것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위에 우뚝 선 이 건물의 웅장함과 정교함은 직접 가보지 않고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 건물을 세운 인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의 하나로 꼽히는 페리클레스다. 그의 치하에서 아테네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적으로 유례 없는 황금기를 맞았다. 그는 민주주의자였으면서도 민중에 이끌리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민중의 뜻인 것처럼 포장, 민중을 리드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아테네 시민은 페리클레스의 피리 소리에 따라 춤춘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아테네의 몰락은 기원전 429년 그가 전염병으로 사망하면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조종하던 인물이 있었다. 그의 아내 아스파시아다. 고급 기생 출신인 그녀는 기생 학교를 차려 기생들에게 철학과 문학을 가르칠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 그녀의 박식함은 당시 아테네를 주름잡던 철학자들 사이에도 소문나 소크라테스까지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한다. 아스파시아는 문장에도 능해 페리클레스가 죽은 뒤 쓴 조사는 명문의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정치적 수완도 뛰어나 살아 있을 때는 ‘페리클레스의 공동 집권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세 이전에는 여성의 지위는 별 볼 일이 없었다. 일반 여성이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하거나 철학과 문학을 논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 기생에게만은 그런 길이 열려 있었다. 서양에 아스파시아가 있다면 한국에는 황진이가 있다.
그녀는 인기 TV극 ‘여인천하’ 의 무대인 이조 중종 때 서출로 태어나 짝사랑하다 죽은 이웃 집 남자의 관이 자기 집 앞을 떠나지 않자 치마폭으로 감싸 혼을 달래 장례를 치러준 후 기생이 됐다. 황진이는 기예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고승과 선문답을 나누고 조선 시대 대학자의 하나인 서화담과 기 철학을 논할 정도로 학문적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었다. 그녀가 남긴 6편의 시조는 ‘조선 시문학의 절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필가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조선 시대 여성의 틀을 깨고 자유로운 삶을 살다 간 그녀의 일생을 오페라로 만든 ‘황진이’가 LA에 상륙, 7~8일 할리웃의 명물 코닥 극장에서 미주 한인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 장치로 유명한 이 작품은 이미 일본과 중국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은 한국 오페라로는 드물게 성공한 작품이다. ‘황진이’의 성공적 미주 초연이 고급 한국 문화가 미 주류 사회에 소개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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