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가주지역 한인들이 뜻을 모아 이민 역사 사적으로 보존에 나선 리들리(Reedley)한인교회당은 초기 이민자들의 조국 독립 운동의 요람이었다.
중가주 프레즈노인근 농촌도시인 리들리와 다뉴바에는 1909년부터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온 초기 이민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들은 1919년에는 다뉴바, 1938년에는 리들리에 교회당을 세웠다. 이 두교회는 1910년부터 1950년 후반까지 한인 농장 노동자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또 떠나온 조국이 일제의 탄압을 받고 있을 때는 나라 잃은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금을 모아 보냈으며 국민회의 의무금을 내기도 했다.
1919년 3,1독립 운동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다뉴바장로교회에서 한인 여성등을 중심으로 대한여자구국단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왜간장 안먹기 캠페인등 독립 운동을 펴나갔다. 1920년부터는 다뉴바 메인 스트릿에서 3,1 독립 만세운동 기념 퍼레이드를 펼치는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또 이 두 한인교회는 사회 참여를 위한 집회장소와 장례와 결혼식등 한인 커뮤니티의 센터 역할을 했다. 그리고 2세들의 한글교육에도 나서기도 했다. 대부분 농장 노동자인 이들은 노동으로 몸은 고달펐지만 교회가 있어 큰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한인교회도 이민자들이 죽거나 타지역 이주로 교인 숫자가 줄자 교회가 문을 닫거나 타민족 손으로 넘어갔다. 먼저 다뉴바교회당이 1958년 2월 4일 문을 닫았다. 그후 타민족교회로 사용되다가 2000년경(정확한 연도미상) 철거되고 그 자리에 다뉴바경찰서가 들어서 현재 교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게됐다.
이번에 지역인사들이 "리들리사한국인 이민역사보존연구회(회장 차만재교수)를 구성, 재매입 나선 리들리교회당은 김호,김형순등에 의해 1938년 10월 건립됐다. 그러다가 교인들이 줄어들자 1973년 한인 교회는 문을 닫고 멕시컨교회로 넘어갔다. 현재 교회당옆에는 이민 선조들이 심어놓은 무궁화와 감나무가 그대로 있는등 선조들은 가고 없어도 애틋한 나라사랑의 정신은 느낄수 있다.
이민 100주년을 앞두고 이민선조들의 사적보존에 나선 것은 뜻깊은 일이다. 그러나 현 교회당의 구입을 위해서는 구입 기금에 대한 한인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리들리 이민역사보존 연구회’가 추진하는 이민 역사유적 발굴,보존 사업이 큰 성과를 거두었으면 한다.
<손수락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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