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의 세아이는 닮았으면서도 많이 틀리다. 첫째아이는 안팍으로 남편을 닮아서 날 때부터 엄청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며 성격까지 여러모로 자기 아빠와 우리 시어머님을 닮았다. 나와는 다른 면이 많다보니 가끔은 옆에서 남편이 설명을 해주어서야 섬세한 큰 아이의 속을 알게될 때가 있다.
반대로 둘째아이는 많은 면이 나를 닮았다. 성격은 물론 나의 기질과 체형마저도 물려받아서 옆으로 누워 자는 잠버릇까지 똑같다. 셋째는 생긴 모습은 첫째와 같고 성격이나 노는 모습은 둘째를 닮았으니 막내딸에 가서야 우리 부부의 합작품을 얻은 셈이다.
내가 어릴 때 친정 아버지는 당신을 닮은 큰딸인 나를 참 귀여워 하셨는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나를 닮은 둘째 딸아이와 매일 씨름을 벌인다. 속 깊은 큰 아이를 키우면서는 생각도 못했던 둘째 녀석의 덜렁거리는 행동이나 끈질긴 투정을 보면 어찌나 화가 나는지 매번 야단을 칠 수도 없고 속에서 불이 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반대로 아이 아빠는 여린 속에 툭하면 눈물이 맺히는 큰 아이에게 더 빨리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큰 아이를 대하기가 편하고 남편은 둘째가 편한 모양이다. 우리 부부가 각자 자기와 반대된 성격의 아이를 더 편히 인내로 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얼까? 나는 왜 나를 닮은 아이를 버거워할까? 그 아이의 성격을 이해하면서도 왜 자주 화를 내게 되는 것일까?
내가 화가 나던 때의 느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아직도 갈등 속에서 고쳐 보고자 애쓰고 있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성격의 단점들을 둘째 아이의 모습에서 보게 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고 더 화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살면서 반복하는 실수나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 싫어서 고쳐 보려해도 사실 쉽지가 않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많은 경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서 언제나 거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을 느낀다. 거기에는 나의 과거 경험이나 교육뿐만이 아니라 유전으로 타고난 성품도 큰 영향이 있는 듯 싶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같은 부모 밑에서 난 형제자매들이 자라는 동안 각자의 성격대로 엄청 다르게 반응하며 커서 제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의 모든 의식과 행동의 습관이 내가 겪은 경험이나 교육과 함께 나의 타고난 천성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니 내가 내 의지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내 속의 바탕이 변하지 않는 한 계속 낯익은 실패로 반복되는 것 같다.
바꿔보고자 해도 계속 같은 문제로 넘어지는 것을 느낄 때 그 절망감, 그 인생의 굴레 앞에 서있는 나를 닮은 딸을 보며 가끔 부딪치던 나의 분노는 결국 나의 한계에 관한 내 스스로에의 분노인 것이다.
내 몸속의 유전인자를 통해서 내 안의 여러 성격들을 갖고 있는 나의 아이, 그 아이가 앞으로 부딪칠 한계가 나에게 이미 익숙한 것들이란 점에서, 그것들을 극복하고 문제의 소지를 피해가는 해법을 찾는 일에 나는 요즘 관심이 많다. 현재까지의 결론은 인간의 힘으로는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사람이 여간해서는 좋게 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를 위하여,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 내 성격의 단점에 절망하는 것보다는 그것들과 함께 하나님이 숨겨 놓으셨을 나의 작은 장점들에 희망을 걸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을 기쁘게 해나갈 용기를 내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승산이 있다는 것 까지는 깨달았으니까. 내 천성에서 기인한 익숙한 절망의 사슬이 내 대에서 끊겨서 우리 딸아이에게 대물림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 중대한 일의 첫 걸음이 매일의 생활에서 아이에게 짜증 안 내고 키우기라는 것에 나는 큰 도전을 느낀다.
고경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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