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거리를 장만하느라 냉장고를 기웃기웃 하다가 봉지 하나가 손에 잡혀서 꺼내보니 ‘옛날 장터에서 먹던 오뎅’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서 ‘옛날식...’라는 게 부쩍 늘은 것 같다. 음식점에도 ‘옛날식 자장면’이 있고, 어쨌든 ‘옛날식’ 뭐라면 우리는 구미가 당긴다. 참 우리는 지독히도 옛날식에 애착이 많은 민족인가보다.
나도 올해는 옛날식으로 많이 돌아가 본 것 같다. 한국신문을 샅샅이 애독하고, 녹슨 한글 실력을 다듬어 글을 쓰기도 하고, 한인 주부들끼리 모여 전통 요리강습도 받고 있다.
바쁜 일 다 제쳐놓고 격주 토요일 아침이면 아줌마, 사모님, 직장여성 오붓이 한자리에 모여 이마를 맞대고 의논하며 배우며 같이 시식하며 히히덕거리는 재미는 옛날에 이웃 아줌마들끼리 모여 노는 바로 그 재미이다.
서양식 티파니를 하듯 아담한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가족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별미도 배우니 옛날식 치고는 최고 아닌가.
요새 우후죽순처럼 번창해 가는 한인 합창단들도 좋은 예이다.
나의 대학시절 4년간 합창단에 몸을 담고 여름방학중에도 연습하던 그 극성. 그 덕분에 전국 대학 합창대회에서 우승하여 TV 출연까지 하던 감격. 수업이 끝나고 어둑어둑할 때까지 모여서 연습하다가 출출한 배를 안고 학교 앞 단골 음식점에 우르르 몰려가 볶음밥 한 접시나 우동 한 사발을 꿀맛같이 삼켜치우곤 하던 꿈같은 그 옛날... 감개가 무량하다.
두 주일 전쯤에는 내가 사는 새크라멘토에도 합창단이 출범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반가운지 신문사에 수소문하여 연락을 해보았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일제히 반대하는 통에 당분간 기다리기로 했다.
동떨어진 교외에 사는 우리에게 주말도 아닌 목욕일 저녁 일곱시는 너무 무리란다. 정원도 손봐야 하고 칼럼이나 요리강습을 먼저 포기하란다. 하고 싶은 일은 이리 많은데 시간은 왜 이리도 모자랄까. 옛날처럼 합창을 조만간 다시 해보아야지 하는 마음만 있어도 흐뭇하다. 인생은 어차피 기다리는 재미가 반이 아닌가.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옛날식 운치가 철철 넘쳐나는 것은 얼마전 추석 특집 화보였다. “햇과일 먹고 공연 보러 가자” “사랑의 강강수월래” 등의 특집들로 그야말로 옛날식의 진수성찬이 벌어졌다. 경남 어느 시골에서, 또 북가주 베이 지역에서 추석빔 한복을 앙증스레 차려 입은 꼬마들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귀중 하다.
미국에서도 꼬마들까지 한국 명절에 한복을 차려 입는 때가 왔다는 게 너무나 뿌듯하고 신기하다. 우리 고유의 옛날식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만남이며 또한 우리의 주체성을 되새김이다. 한인 이민사회에 옛날식 우리 인정이며 아름다운 예의, 친절, 풍습 등이 넘치기를 기대해 본다.
박정현 <가주정부 전산시스템 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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