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대표적인 양당 국가다. 미국에서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은 공화 민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다른 정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대선 때 랠프 네이더가 출마해 고어 낙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녹색당, 로스 페로의 개혁당, 최대의 제3당을 자처하는 자유당 등 여러 군소 정당이 있다.
그러나 이런 당 후보는 당선을 꿈꾸기보다는 자기 소신을 펴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다. 녹색당은 환경 보호, 개혁당은 선거제 개혁, 자유당은 개인의 자유에 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비록 현실적으로 집권할 가능성은 멀지만 일반의 조롱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확신 정치인’이란 존경을 받는다.
한국에서도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온갖 군소 정당 후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군소 정당이 미국과 다른 점은 아무런 철학도 조직도 없는 돈키호테들이 그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돼 어른(전두환)을 더 극진히 모시겠다는 일념 하에 출마를 결심했다”는 장세동 후보나 “당선되면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400개를 즉시 폐기하겠다”는 우리 겨레당 김옥선 후보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미주 교포 출신으로 연방 하원에 여러 번 도전했다 낙선한 후 삼미그룹 부회장을 거쳐 웨이터 노릇을 하던 서상록 노년권익 보호당 후보의 강령은 ‘지역감정 조장 정치인 때려죽이기’ ‘사법시험 폐지를 통한 변호사 수임료 대폭 인하’ ‘북한에 살고 싶어하는 노인 보내주기’ 등이다.
“당선 즉시 계엄령을 선포, 국회의원 전원을 사법처리하고 사회 지도층과 정치인 3,000명의 살생부를 만들며 암행 어사제를 부활하고 불효자는 사형에 처하겠다”는 후보(민주 공화당)가 있는가 하면 “97년 DJ 당선을 예언했던 심진송씨가 당선을 점쳤다”며 나온 여성 후보(민주 광명당)도 있다.
이쯤 되면 약자를 돕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풍차에 도전한 돈키호테를 이들에 비교한다는 것은 세르반테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인간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분야의 하나다. 국민이 어떤 정치를 펼치는가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하긴 주요 정당들도 이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판이니 군소 정당이야 오죽 하겠는가만 그렇더라도 온갖 도깨비 같은 인물들이 쏟아져 나와 대통령을 하겠다고 아우성 치는 한국의 현실은 딱하기 짝이 없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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