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둘이 다 각자의 방에서 자고 싶은 대로 자고 먼저 일어난 사람이 커피를 끓이면 그 솔솔 올라오는 커피 향에 잠을 깬다. 아! 오늘은 해가 좋구나, 샌프란시스코 중에서도 ‘포그벨트’ 지역에 속하는 우리집은 한 여름에도 자주 안개 속에서 쌀쌀하다.
뒷마당에서 방 한칸 만큼의 잔디를 심어놓고 맨발로 드러누워 책을 읽다가 낮잠이라도 들면 멀리 있는 딸아이의 전화벨 소리, 또 막내에 대한 불평이다.
“너도 어렸을 때는 그렇게 말 안들었어. 그런 아이가 크게 될 테니 걱정마”
이제 한국에는 나의 고향이 없다. 내 어릴 적 추억을 찾아갔던 곳마다 그 놈의 땅값 때문에 다 팔고 떠나버려서 여기던가, 저기던가 두리번 거리게 만들었다. 그냥 내 작은 뒤뜰에 이렇게 누워 고향을 그리면, 긴긴 시간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사치가 있어서 좋다. 젊어서 읽었던 ‘한중록’도 다시 읽어보고 백건우의 세르게이 라흐마흐노프 피아노 협주곡 속에서 심심할 사이도 없다. 20년 전에 모스코바에서 이 협주곡을 즐기던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온이 또한 송구스럽지도 않다.
태평양 바다 위로 해가 떠나고 하늘에서 별들이 인사를 시작하면 응접실 사방의 커튼을 열고 벽난로에 불을 켜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연상한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가야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여러 마일을 가야한다/
그래, 좋은 글은 오히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꽃피울 수 있다. 훗날에 그 동포문학의 꽃 속에 나의 꽃도 한송이 피어 있기를 바란다면 나를 참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할까….
하태경/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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