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즈 퍼레이드 꽃차 탑승 이민 100년의 영웅들
이 경 원 (언론인)
수많은 언론관련 수상
살인혐의 이철수씨 억울한 누명벗기는등 소수계 인권옹호 기여
한인 1세로 미 주류 언론계에서 명성을 떨쳐온 이경원(73) 기자는 미주 한인 언론계의 ‘개척자’이자 ‘대부’로 불린다.
이씨의 삶의 이력서에는 신화와 같은 행적들이 줄줄이 기록돼 있다. 아시아계 이민 1세로서는 최초로 미 주류언론의 기자가 되었고 특히 한국인 최초의 심층취재 전문 사건기자로 미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40여년을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총 25개 이상의 언론관련 상을 받았고 지난 1997년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언론인 50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신문박물관(Newseum)에 이름이 올라 있기도 하다.
이씨는 기자이면서 인권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미국 사회의 환부를 파헤치고 한인 등 소수계의 민권을 옹호하는데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28년 개성 태생으로 고려대 2학년 재학중 유학차 도미한 이씨는 웨스트 버지니아대와 일리노이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56년 미 주류 일간지의 하나인 테네시주 킹스포드 타임스 기자로 입사, 당시 미국 내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주류언론 기자가 됐다. 이후 1958년에서 70년까지 웨스트버지니아 찰스톤의 가제트지 사건기자로 흑인 인권운동과 탄광 근로자의 폐사증, 선거비리 등을 취재했고 70년 새크라멘토 유니온지로 옮겨와 주정부 주택국 비리와 주의원들의 은밀한 세비 인상 등을 추적·폭로하는 활약을 남겼다.
새크라멘토 유니온 시절 이씨가 추적·보도한 이철수씨 사건은 미 언론사와 한인 민권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1974년 유죄를 선고받은 한인 이철수씨 사건을 파헤쳐 보도한 78년의 이씨의 기사는 결국 이철수씨의 누명을 벗겨 마침내 83년 그의 무죄방면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사건 취재 중 한인 등 소수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한인 영자신문 ‘코리아타운’을 직접 발행하기도 한 이씨는 1989년부터는 LA의 한국일보 미주본사의 영문 편집장으로 활약하며 4·29 폭동의 희생자인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알리는데 주력해 왔다.
이민 1세 출신으로 주류 언론계에 우뚝 서 성공적 이민자의 표상이 된 이경원씨는 85년 한미언론인협회(KAJA)를 공동 창립하는 등 미 언론계와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한인 후배들을 이끌고 인도하는 역할도 해오고 있다. 단지 이민자로서 주류사회에서 개인적 성공을 이룬 것을 넘어서 그 누구에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커뮤니티를 먼저 생각하는 활동가로 자리매김한 이씨는 자랑스런 1세로 자라나는 한인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민사의 영웅이다.
<김종하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