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무현 대선 후보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시간에 쫓겨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단일화 방법이긴 하지만 그만큼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를 신뢰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합의과정에서 조사 방법을 둘러싸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여론조사는 현대 선거전에선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여론조사는 후보들의 지지정도나 성향을 파악해 선거전략을 돕는 것은 물론 출구조사를 통해 선거결과를 알아 맞추기도 한다. 동시에 예측을 잘못해 후보나 지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올바로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여론조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표본(샘플) 추출과정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1,000명에서 2,000명 정도의 표본을 추출해 조사를 하는데 이때 추출된 표본이 전체 모집단(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할 사람)을 대표할 만한지 여부가 관건이 된다.
만일 추출된 표본이 대표성이 없을 경우 여론조사는 별 의미가 없게 된다.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의 낙선을 예측했던 적이 있다. 전화 번호부를 이용해서 수천명의 표본을 추출해 조사를 했더니 루즈벨트 대통령의 낙선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반대였다. 당시만 해도 전화는 비교적 부유층의 소유물이었고 이들은 대부분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에 전화번호부에서 추출된 표본은 대표성을 결여했던 것이다.
한인 언론에서도 종종 여론조사를 하는데 표본 추출의 대표성이 보장 안되면 사실상 이 조사는 별 가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단지 표본수를 늘인다고 해서 대표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정확한 기법에 의해 표본을 추출하면 표본수가 1,000개가 되든 10만개가 되든 결과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표본을 추출하고 조사를 해도 100%의 정확도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론조사는 항상 오차범위의 수치를 밝힌다. 예를 들어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38%에 오차범위가 +/- 2%라고 하면 노 후보의 실제 지지율은 36%에서 40% 사이라는 것이 되며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차범위를 제시하지 않은 채 지지율만 발표하는 여론조사는 신뢰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표본 추출을 제대로 했다고 해도 조사 문항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줄 수가 있다.
이번 단일화를 위해 사용된 설문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해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가,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는가”였는데 이는 사실상 이 후보에 대한 경쟁력보다는 단일후보 선호도를 물은 것으로 만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해 누가 이길 것으로 보느냐”라고 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대답이 솔직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의 ‘역선택’ 방지 문제도 이 후보 지지자들이 이 후보가 상대하기 쉬운 상대를 고르기 위해 솔직한 대답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의도였다. 물론 임의 추출로 행해지는 여론조사에서 고의적인 역선택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여론조사는 선거의 필수품이긴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여론조사 결과로 단일화가 되었고 여론조사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론 여론조사의 남용이나 만능주의가 생길까 우려된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국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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