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남녀관계 화근정초 LA한인타운 가라오케 업소에서 벌어진 살인-자살 사건은 ‘남녀간의 어지러운 정’이 불러온 비극의 종말이다.
다단계 상품 판매조직인 퀵스타(Quixtar)에 뛰어든 오현수(36)씨가 가해자 이영재(37)씨를 만난 것은 지난 2001년 12월께. 고참과 신참으로 만난 이들은 처음에는 실적을 올리는 방법을 조언해주고 받는 사이로 지내다가 차츰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연봉 10만달러 정도가 보장되는 ‘어메럴드 다이렉트’로 이씨의 직위가 승급되던 지난해 9월 오씨는 다단계 웹사이트에 “에머럴드님의 희생으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돼 너무 너무 행복하다”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고, 이미 남자가 있었던 오씨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씨를 선택하고 2002년 10월께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씨를 알게 돼 행복하다던 오씨의 마음은 이씨와 동거생활을 시작한 후 수개월부터 식기 시작했다.
한 주변 사람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같이 살기 시작한지 얼마 후부터 성격차이가 많이 난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4일 현장에 화환과 추모 양초를 놓고 간 한인은 “하나(오씨의 영어명)가 이씨가 의처증이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구타도 당해 경찰신고가 껄끄러우면 상담소를 찾아가 더 큰 일이 나기 전에 손을 쓰라고 충고도 했다”고 전했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비극의 씨앗은 오씨가 “돈을 더 벌기 위해” 두 번째 직업을 가진 것. “고지식한 한국식 스타일의 남자”였던 이씨는 오씨가 바텐더로 일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고, 오씨가 손님으로부터 받는 꽃이 많아질수록 두 사람 사이의 말다툼 횟수도 잦아졌다.
이들 사이는 지난 연말 망년회 손님을 배웅하는 오씨를 목격한 이씨가 대노하며 극도로 악화됐다. 새해 첫날 오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결별을 선언했고, 사건 발생 당일 이씨는 옛 연인을 찾아가 결합을 요구한 후 거절당하자 평소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오씨를 살해하고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현장에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성격은 달랐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건 이모저모
평소 성실근면 주위 평 좋아
◎…범행을 저지른 이영재씨는 근면 성실하고 인간관계도 좋았지만 평소 술을 즐기고 화가 나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단점도 있었다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평가. 이씨와 함께 퀵스타 닷 컴에서 일했던 한인남성은 “직장 동료들과 사이도 좋았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여자를 잘못 만나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업주도 피해자
◎…사건이 발생한 업소가 또 다른 피해자란 동정론이 제기되고 있다. 도미한지 20여년 동안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얼마전 ‘웨이브 카페’를 개업한 업주는 종업원의 치정 관계 때문에 임시 폐업을 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을 맞았으며, 현장에 있던 다른 종업원들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고자 없어 수습 늦어져
◎…가해자 이씨와 피해자 오씨는 LA에 연고자가 없어 사후 수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두 사람의 자동차는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일요일 오후에도 사건 현장인 유흥업소 주차장과 인근 도로변에 서 있었다. 현장에서 두 사람의 사체를 옮긴 LA카운티 검시국도 일요일 오후까지 “가까운 친지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이들의 신원을 공식 공개하지 않았다.
<구성훈·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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