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상 중 가장 권위가 있는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일반의 관심을 끄는 것은 평화상이다. 문학상을 제외한 나머지 상들은 그 분야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누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관심이 큰 만큼 논란이 많은 것도 이 상이다. 노벨상을 만든 노벨도 이 점을 우려해 평화상만큼은 스웨덴 한림원이 아니라 노르웨이 의회가 선정토록 했다. 당시 스칸디나비아의 강국이던 스웨덴이 선정하면 정치적 입김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약소국이며 정치적으로 중립적 위치에 있는 노르웨이에게 결정권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인물이 상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논란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치지 않았다. 시오도어 루즈벨트는 미 제국주의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일로전쟁 종결을 중재했다는 이유로 19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보다 더 자격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1973년 월남전을 종식시켰다는 이유로 키신저와 함께 수상자로 지정된 레둑토다. 2년 후 협정을 깨고 월남을 공산화한 그는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인지 수상을 거부했다.
1992년 마야족 인권을 위해 싸운 공로로 상을 받은 과테말라의 리고베르타 멘추도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인류학자와 뉴욕타임스 조사 결과 노벨상 수상의 자료가 된 그의 자서전 중 상당 부분이 허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994년 중동 지역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평화상을 수상한 아라파트는 수십 년 간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 활동을 벌인 인물이다.
평화상을 받고 망신당한 사례도 여럿 있다. 1983년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을 이끈 공으로 상을 받은 레흐 바웬사는 그 후 대통령까지 지냈지만 자신의 업적에 도취해 국민들에게 버림받았다. 지난 번 선거 때 재출마했다 10%도 안되는 표를 얻고 정계를 은퇴했다.
1990년 상을 받은 고르바초프도 비슷한 케이스.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꼽히던 그는 지금 자기가 다스리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됐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뒤끝이 좋지 않은 인물에 김대중 대통령이 추가될 모양이다.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뒷돈을 준 일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노벨상 욕심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일에게 돈을 준 것이 노벨상을 타기 위한 것인지 다른 목적이 있어서인지는 본인만 알 일이지만 정상회담이 평화상 수상자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평화상 수상자 중에는 슈바이처 박사부터 테레사 수녀에 이르기까지 정말 받을 만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명예에 눈 먼 엉터리 정치인도 끼어 있다. 노벨상의 권위를 위해 권력 주변에 얼씬거린 사람은 수상 자격을 박탈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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