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라크 대통령이 된 사담 후세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란을 침공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소련제 첨단 장비로 무장된 100만의 병력을 갖고 있던 이라크가 갓 집권한 호메이니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전황은 사담의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회교 혁명 열기에 고취된 10대 소년들이 맨 몸으로 이라크 군의 공격에 저항해 왔기 때문이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후세인은 이란 군을 향해 독 개스를 살포했다. “죽음보다 쓴 약을 먹는 심정으로” 호메이니가 종전 협정을 맺은 것은 그 후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월남전 이후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싸움이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계속된 이 전쟁으로 150만의 사상자가 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렇게 큰 희생이 발생했음에도 이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차디찼다. 전 세계적인 반전 시위나 이라크의 독 개스 공격을 몸으로 막겠다는 인간 방패는 찾아볼 수 없었다.
1991년 유고 연방에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가 떨어져 나가면서 발칸 반도에 불기 시작한 분규는 나치의 유태인 멸종 시도 이후 최악의 인종 학살이었다. 보스니아의 회교도 여성들이 집단 강간당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인종 청소로 고향에서 쫓겨나는데도 세계는 몇 년 동안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1998년 나토 군의 폭격을 맞고서야 지금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밀로세비치는 평화 협정에 서명했다.
1994년부터 10년째 진행중인 러시아의 체첸 침략도 그 잔혹함에 있어 사담이나 밀로세비치에 뒤지지 않는다. 체첸 독립 운동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 군은 수십만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라크 전 개전과 함께 반전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중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중 상당 부분은 극좌 반미 성향을 띈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데모는 반전 시위라기보다는 반미 시위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라크와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는 침묵하면서 유독 미국이 하는 전쟁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라크가 10여 년 째 유엔 결의안을 무시하고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해 왔으며 이를 알 카에다 등 테러 조직에 넘겨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프랑스와 러시아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조만간 후세인 정권이 무너져 생화학 무기 공장이 공개되고 고문으로 사지가 절단된 피해자들의 증언이 TV 화면에 나오는 날 ‘편식성 평화주의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다.
<민경훈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