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의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스타들을 위한 화려한 붉은 카펫이 깔리는 대신 반전 시위대의 함성이 행사장 주변을 메운 가운데 거행됐다.
행사가 치러진 코닥 극장 주변에 모여든 시위대는 “부시는 미국을 배반했다” “부시_멍청하고 위험한” “오스카는 평화를 위해 봉사하라”는 등의 구호가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물론 “신이 미국을 축복할 것”이라는 피켓을 들고 이라크 전쟁 지지 시위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2차 대전 중 살아남은 유태인 피아니스트를 연기,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는 “영화를 촬영하며 전쟁의 흉포성에 대해 생각했다. 알라를 믿든, 예수를 믿든,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전쟁이 빨리 끝나길 기원한다”며 “퀸즈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파병됐다. 그의 안전을 빈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미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의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보울링 포 콜럼바인’으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허구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허구적 이유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 우리는 이 전쟁에 반대한다”고 외쳐 객석으로부터 환호와 야유를 동시에 받았다.
지난해 칸 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기도 한 무어 감독은 당초 시상식에 불참하고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으나 시상식에서 반전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라크 전쟁에 따른 보복 테러를 막는 것은 이날 시상식의 주요 과제가 됐다. 이 때문에 행사장 주변에는 엄청난 수의 경찰과 저격수가 곳곳에 배치돼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17일부터 극장 앞 할리우드가와 하일랜드, 오렌지 애비뉴 일부 구간에 교통 통제가 실시됐고 지난해보다 세 배 많은 1,000여명의 경호 인력이 금속탐지기를 갖추고 배치됐으며 도로 통제 구간도 두 배로 늘었다.
수전 서랜든, 팀 로빈스 부부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석유 개발권 확보를 위한 전쟁을 비난하기 위해 리무진 대신 소형 전기차를 타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감독 마키 아우리스마키, 톰 행크스가 불참한 가운데 당초 불참할 것으로 알려진 윌 스미스와 니콜 키드먼은 시상식에 참석, 주최측을 안심시켰다.
전쟁 분위기를 반영하듯, 유럽권의 유명 디자이너가 불참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조르지오 알마니와 도나텔라 베르사체, 런던에 머물고 있는 매튜 윌리엄스와 베이루트에 머물고 있는 엘리 사브는 모두 행사 참석을 거부했다. “전쟁이 터져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게 두렵다”는 이유였다.
아카데미 행사를 주최한 프랭크 피어슨 미국 영화과학 아카데미(AMPAS) 회장은 “미국적 가치가 전세계에서 의심 받고 있는 상황일수록 이런 문화적 행사는 수행돼야 한다”며 아카데미의 행사를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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