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여름은 한국전 초기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부산인근까지 후퇴하였다가 다시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등 대규모의 전진 후퇴가 거듭되다가 현재의 휴전선 부근에 전선이 형성돼 공방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포병장교로 강원도 금화 남쪽 한탄강 북쪽강변에 배치되어 있었고 미 제 3보병 사단의 포병부대는 우리 부대 건너편인 한탄강 남쪽강변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한국군이 가진 화포는 사정거리 1만2,000야드 정도가 최장거리였지만, 미 제 3사단 포병부대의 화포는 사정거리 1만8,000야드 정도까지 이르고 그 위력도 대단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던 전투에서 한국군이 미치지 못하는 적의 목표물을 미 포병부대가 너무나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하여줌으로써 우리 군은 많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따뜻한 정과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해 여름, 때로는 작전의 틈을 타서 한탄강 맑은 물에 함께 목욕도 하였는데 당시 한국군에는 세탁비누만 지급되어 그것으로 세탁도 하고 세수·목욕까지 하였다.
그때 미군으로부터 처음 얻어 쓴 럭스 비누는 그렇게 좋은 수가 없었다. 향기도 좋고 사용 후 피부가 부드러워졌다. 그뿐 아니라 콜게이트 치약도 처음 사용하였는데 입안이 온통 화하여 신기하였다.
간혹 미군부대에 들러 식사도 같이 하였는데 모든 것이 이상하였고 특히, 으깬 감자인 매쉬드 포테이토는 지금도 먹을 때 마다 옛날 일들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
한번은 1갤론짜리 피넛 버터 한통을 얻어와서 몇 사람이 모여 맛있게 나누어 먹은 후 모두 배탈이 나서 혼이 났었다.
이 뿐아니라 전선에서는 많은 크고 작은 아름다운 일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에서 시시각각으로 승전보를 전해준 미 제 3보병사단 특히 포병의 전투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시 한번 50여년전을 회상하면서, 전선에서 맺은 미 제 3보병사단과의 인연을 잊을 수 없고 그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조용하/스티븐슨 렌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