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 홀에서 이븐파를 기록한 박세리는 버디를 한 호주의 샤니 와우와 15언더파로 동타. 그러나 마지막 18번홀(파5, 460 야드)을 맞은 박은 잠시 기도한 뒤 티샷. 그러나 깊은 러프에 빠지고 말았다. 그 사이 와우는 온 그린으로 찬스를 만들었다. 전세가 뒤집히는 듯 했다.
그러나 박은 러프에서 내리막을 의식한 나머지 어프로치가 약해 홀컵에서 2∼3m 가량 못미쳤다. 뒤이어 와우의 롱 퍼팅. 이것만 성공하면 경기는 끝난다. 와우는 갤러리를 향해 혀를 내밀고 미소를 날리며 승리를 자축하는 듯 했다. 신은 그런 와우의 자만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박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드디어 연장전. 18번 홀에서 시작하지만 누가 먼저 홀컵에 넣으면 경기는 끝나는 서든 데스 게임이다. 박의 승부 정신은 바로 이때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연장 3번째 홀인 18번홀. 박의 세컨샷이 본부석 시상대를 맞고 떨어진 것. 이때 와우는 온그린, 이제 승리의 여신은 와우에게 미소짓는듯 했다. 그러나 드롭볼을 한 박이 침착하게 홀컵 2m 정도로 붙인뒤 기적같은 퍼팅에 성공,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연장 4번째 홀인 10번홀. 박은 3라운드 때 공을 물 속에 빠뜨린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기도했다. 구름떼처럼 모인 갤러리들이 숨죽였고 하늘에는 간간히 비행기 소리만 들렸다. 먼저 와우의 티샷. 공은 연못으로 날아갔고 세컨샷도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박은 침착하게 스윙, 나이스 샷. 이어 친 공이 그린을 너머 15피트 가량 언덕으로 넘어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때 박은 홀컵 2∼3m 가까이 붙였고, 와우는 모래를 튀기며 홀컵을 지나쳤다. 이때 박이 퍼팅에 성공, 120분간의 접전을 마무리하는 순간 비로소 박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통산 20승 가운데 역전승 9차례, 4차례의 연장전 전승 등 승부사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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