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랑스에 대해 미국의 심기가 지극히 불편하다.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국제여론을 선동한 괘씸죄도 있지만 프랑스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해외정책을 번번이 방해한 전과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독립전쟁에서 미국을 도와준 이후 항상 같은 편에 선 영원한 우방이었던 프랑스가 왜 ‘우방 아닌 우방’이 된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프랑스가 과거 강대국이었던 옛 영광을 잊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 선봉이 돼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국가이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범한 외교적 실수도 무시할 수 없는 또다른 이유에 속한다.
프랑스는 1940년 나치 독일에 패전, 독일의 지배아래 프랑스 남부마을 비시에 수립된 괴뢰정부와 영국에 형성된 찰스 드골 장군의 망명정부로 갈리게 되었다. 프랑스의 파시스트 세력이 앞잡이가 된 비시 정권은 민주주의를 배격하고 유대인들과 망명자들을 독일에 인도, 나치 독일의 대학살 정책에 기꺼이 협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친독일 비시정부를 나치 독일로부터 이간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비시정부와 수교를 맺고 드골과 레지스탕스를 배척했다. 루즈벨트는 전쟁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다면 전후 프랑스에 유대인들과 레지스탕스를 탄압하는 파시즘 정부가 들어서도 상관이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는 드골을 경멸하는 개인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프랑스 해방 직전까지 드골과 레지스탕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프랑스 국민들은 조국을 해방시킨 미국의 잊을 수 없는 은혜에 감격했지만 전후 프랑스를 이끌게 될 드골 등 레지스탕스 지도자들로부터는 미국이 해방해 주고도 원한을 사게 된 셈이다.
결국 드골은 이 때 원한을 톡톡히 갚았다. 프랑스 대통령이 된 드골은 소련과 데탕트를 추진하고 한 때 나토(NATO)에서 탈퇴하는 등 틈이 날 때마다 미국에 눈엣가시가 되었다.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듯이 루즈벨트와 드골은 위대한 정치가답지 못한 편협한 사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한가지 교훈이 있다면 전쟁 중에서도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는 일화가 아닌가 싶다. 백성도, 영토도 없는 망명정부의 비위를 건드렸다고 20년 후에 여파가 있을지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부시 행정부는 초강대국 시대에 외교가 필요 없다는 견해에 사로잡힌 것 같다. 부시 독트린의 의미를 숙고할 때 이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쉬운 ‘군사적 단계’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라크 재건을 앞두고 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의 관계, 북핵 문제, 이스라엘 평화안, 유럽과의 관계 등 외교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실에서 부시 행정부의 외교 중간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
우정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