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도 소아마비 장애인
딸과 한평생 수발들어야
“내 자식이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죠.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내 핏줄이니까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삭이는 것이 최선이죠. 그래야 가정이 평화로와 지니까요.”
뇌성마비 장애인 딸을 둔 어머니 안희을(48)씨는 큰딸 나래(23)양을 보면 되레 고마운 생각이 든다. 손·발이 심하게 뒤틀리거나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 어머니날만 돌아오면 웬지 가슴이 아프기만 하다. 나래가 언젠가 어머니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직접 달아줄 날을 기대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안씨 자신도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를 못쓴다. 그래서 보조기(브레이스)를 달고 다닌다. 그럼에도 자신 보다 몸이 더 불편한 딸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나래가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가길 기대하기 보다는 지금 이 상태로 더 크지도, 더 나이가 들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둘 사이에 시간이 정지됐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안씨는 그런 딸을 보면서 한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한시라도 딸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래가 식사나 목욕을 할 때 도와줘야 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가야 한다. 나래가 있는 곳이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 하는 숙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죠. 다른 한인 부모들이 우리 나래를 이상하게 봐 속상할 때도 많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편한 마음으로 극복하죠.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나래에게 화를 내거나, 또는 가족에게 짜증을 내면 남편과 싸우게 되고, 그래서 가정이 평화로울 수 없겠지요. ”
나래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다. 3살 때 아틀란타로 이민온 나래는 이후 초·중·고 특수시설 학교에 다녔다. 지난해 5월 3년간 다닌 둘루스고교 특수 클래스를 졸업했다.
“졸업이후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어 그냥 집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때로는 샤핑을 가기도 하고, 토요일에는 밀알선교단에서 장애인 아이들과 찬양도 하고 하루를 보내지요.”
나래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집에서 강아지·잉꼬·열대어를 기른다. 하루종일 새들과 놀기도 하고 만화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런다. 이민온지 20년 된 어머니 안씨는 그런 딸과 늘 의사소통한다. “손짓만 해도 무슨 말인지 알고, 울음소리만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지요. 얼굴 표정만 보면 알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보니 나래의 머리 속에 들어왔지요.”
나래는 아버지가 둘루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남들처럼 남자친구를 사귈 수도 없어 답답하다. 안씨는 그런 딸의 남자친구도 된다. 큰딸 나래가 가슴에 꽃을 달아준 꿈을 꾼 어머니 안씨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우리는 행복해요. 누구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죠.”
/김상국 기자 koreatime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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