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국민학교에 다닐 때 뭘 배웠는지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민방위 훈련은 잘 기억난다. 수업도중 지루할 때 쯤이 되면 꼭 민방위 훈련이 있었다. ‘민방위 날’ 사이렌이 울리면 불을 끄고 집에서 하던 일을 모두 멈춰야 했다. 민방위대 원들이 소등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거리를 돌 며 “거기 OOO호 불꺼요!”하고 외치던 생각이 난다.
당시 어린 마음에 이같은 기분 전환을 재미있어 했지만 그래도 독재정권의 목적이 달성됐던 모양이다. 어렸을 때 꿈에 인민군이 쳐들어와 학교 쪽으로 진군하는 꿈을 꾼 적이 한번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미국에서도 민방위 훈련이 있었던 시절이 있다. 50년대 미국 어린이들도 핵공격에 대비해 몸을 꾸부리고 책상아래 숨는 훈련을 받았다. 지난해 DVD로 나온 다큐멘터리 ‘원자 카페’ (Atomic Cafe)는 미국 정부의 선전 및 공보물들을 모아 편집한 것인데 그중에서도 핵공격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교실에서 의자 밑에 숨거나 야외에 있을 때 소풍바구니를 머리에 뒤집어쓰라는 ‘교육’ 필름과 미군 장교가 핵폭탄 실험지에 보호복 없이 들어서는 사병들에게 “방사능에 노출돼 병이 생길 정도면 이미 폭발에서 죽었을 것”이라며 방사능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수백달러를 들여 구입한 ‘방사성 낙진 대피소‘ (fallout shelter)라는 쓸모 없는 판잣집 광고 등이 있다.
+웃기면서도 웃을 수 없는 구경거리로 미국이 이런 때도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당시 미국인들과 군인들을 기만한 이들 선전물은 조셉 맥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정계 등 사회 전체가 공산당에 침투됐다며 시작한 마녀사냥과 함께 50년대 핵무기 공포가 절정에 달했을 때 파라노이아에 사로 잡힌 미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60년대 핵무기에 대한 지식이 확산되면서 미국 정부의 공신력이 처음으로 흔들리고 냉소의 시대가 도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을 볼 때 50년대의 파라노이아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북한의 위협과 소련의 위협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테러의 위협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50년대를 되돌아 볼 때 당시 반응이 집단 히스테리가 틀림이 없는 것처럼 오늘날 테러와의 전쟁에 따른 희생을 미래에 되돌아 본다면 어떻게 비칠까.
더욱이 백악관이 50년대의 원자력위원회(AEC)처럼 국민을 오도했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즉각적인 안보 위협’을 들어 선제 공격의 정당성을 미국인들에게 설득시켰으나 일부 첩보관리들의 주장대로 백악관이 첩보기관에 압력을 가해 이라크에 관한 정보를 과장 혹은 조작해 위기감을 조장했다면 부시 행정부의 공신력은 실추될 수 밖에 없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공포 밖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한 말을 정치인들과 우리 모두가 좀더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우 정 아 <국제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