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일을 하며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도 이방, 새크라멘토도 이방이었던 내가 ‘그분’의 소명으로 가족과 함께 이 땅을 밟았을 때 그 무엇이 큰 숙제처럼 내게 다가왔다. 이 땅은 미지의 땅이었기에 우선 사람들을 알아야 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자 전화번호부를 열었다. A부터 한국 성씨를 찾았고, 그 전화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들과의 통화에서 내가 느낀 것은 무엇일까. 그 통화들을 통해서 나는 LA나 뉴욕과는 또 다른 폐쇄된 한인사회의 한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한 가지는 ‘실망’이었다. 기대가 컸기에 상대적으로 그 실망은 더 컸다. 낯설고 물선 이국 땅에서 의지한 것은 동포였는데 한결같이 그 동포로부터 당했다는 얘기였다. 얼마나 어떻게 당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서 그들은 무인도를 택했고, 그 안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고독을 달래며 살고 있었다. 한국인이면서 한국 사회를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의 아픔 아닌 아픔을 우리는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여겨야 한다.
그들중 몇 분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으신가요?”너무 당돌한 질문이었는지 아님 스스로도 그랬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도 그랬을지 모르죠" 대답은 그랬다.
아예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아예 만남은 없었기 때문이리라. 알게 모르게 나도 남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히고 살았고, 나도 남에게서 상처를 입고 살아왔다. 그건 우리가 무서워할 것이 아닌 삶의 한 단면이며, 그것을 통해 사회는 성숙해진다. 고추친구와 함께 코피 터져가며 싸웠고 그리곤 너무 가까워졌던 흘러간 그 때가 생각난다. 싸우면서 손해도 입고 피해도 줄 수 있다. 다툼 후엔 정이 더 깊어진다. ‘실망‘ 너머에 더 깊은 관계가 기다린다. 싸우되 더 큰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 뭉쳐서 싸우며 사랑하다 보면 우리 후손 때 가서는 실망을 넘어선 성숙의 역사가 기록될 것이다. 이제 무인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자. 그래서 모두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보자.
silasn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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