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참석했던 결혼식에서 목사님의 주례사가 생각난다.
평범하게 진행되던 주례사 내내 이곳저곳 산만하게 딴전을 부리고 있다가 ‘복종’이란 한 단어에 귀가 확 쏠렸던것이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결혼식 주례사에서 흔히 사용되는 성경구절 중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내용의 주례사였는데 유독, 복종이란 말에 귀가 솔깃한 것이였다. 물론 그 뒤에는 조건조로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항목이 있지만 그 대목은 한귀로 듣고 흘려서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또렷히 기억나는 아내의 ‘복종’이란 말은 온 세상 남편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성경구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현대 남편들에게 아내의 복종이란 말은 해리포터 영화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신비한 상상정도에 가깝다. 오히려 아내의 ‘복종’보단 아내에게 ‘복종’쪽이 현실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복종이란 단어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단어가 되어버린지 오래가 아닌가 싶다. 머슴을 부리던 이조시대 이후로 복종내지 순종이란 말은 좀처럼 우리생활에 어울리지가 않는다. 영어로 obey란 말은 더더구나 쓸 용도가 없다. 복종이란 단어에는 억압과 핍박이라는 뉘앙스가 따르기 마련이기에 요즘처럼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 풍토 속에 찾아보기 힘든 단어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학생이 스승에게 대드는 요즘에 아내에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복종을 강요하기엔 남자가 보기에도 조금은 미안한 구석이 있다.
인생의 어느 하나도 정의를 감히 내리기에 아직은 서툰 나이지만 내 나름대로, 거의 독학으로 깨달은 나의 결혼에 대한 정의는 양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내는 이렇게 해야되고, 남편은 저렇게 해야되는 것이 아닌 아내나 남편 모두가 똑같이 서로에 대한 양보가 바로 행복한 결혼생활의 열쇠라고 정의를 내려본다.
10대 때에는 재미로 이성교제를 하고 20대에는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에 목을 매달지만 단거리 질주인 연애와 달리 장거리 마라톤인 결혼생활에서 적당한 상호간의 양보와 배려의 안배가 없인 완주가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살아온 방식이나 성격은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아도 타인에 의해 바뀌어질 수가 없는 것이기에 그 사람의 단점들까지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가면 마음도 편할뿐만 아니라 성공률도 없는 인간개조 작업에 에너지와 세월을 낭비하기보단 부족한 두 사람들끼리 상호공존할수 있는 지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옳은가를 알면서도 매번 실천이 어렵다는 것이다.
부부싸움 도중,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 가장 나중에 떠오르는 감정이 양보와 배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몇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꺾여 금방 후회를 할텐데도 그 순간 만큼은 …너를 인정하고… 양보하고….사랑하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시나리오다.
말로는 이길 재간이 없어 흥분에 혀가 꼬여 버벅거리다 결국엔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토해내는 남편들의 한 마디. 남편 말에 복종해!
…그래서 성경말씀은 진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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