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언주의 살며 사랑하며
▶ 절제할 수 있을 때 아름다워
개인이 건강하지 못하고 병들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가정이 병약하게 되고 결국은 사회가 병들면서 그 병폐는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건강하지 못한 음습한 삶이 결국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초등학생에서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도덕한 외설에 휩쓸리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쌍방향은 물론 다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외도문화’를 양산하고 있으며, 이곳 이민사회 역시 심각한 병리현상을 앓고 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외도’ 신드롬에 빠져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그러나 ‘유쾌한 불륜’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신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파로 수도 없는 개인과 가정이 깨지고 사회는 신음하고 있다.
얼마전 한인사회의 존경과 신망을 받던 한 인사가 이 늪에 빠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사태를 목격하면서 ‘과연 어디까지인가’하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소용돌이치는 이상한 현실에서 과연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심한 자괴감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수도 없이 마음속의 간음을 저질렀다는 지미카터 전 대통령의 신앙고백이 널리 회자된 적이 있었다. 독실한 침례교인인 그의 고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그의 도덕적 용기를 칭송했으나 교계는 오히려 냉담했다.
종교 지도자를 포함한 우리들 모두는 ‘도덕적으로 얼마나 깨끗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면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카터의 고백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누가 이 계명에 자유스러울 수 있겠는가. 그만큼 이성에 대한 유혹은 무서운 것이다.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시문에 능했던 조선 최고 명기 황진이가 오죽하면 성인은 화담(서경덕)밖에 없다고 했을까. 뭇 사내들이 숭배하다시피 한 황진이를 화담은 잠자리까지 같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탐하지 않았다. 자신을 흠모해 마지 않았던 그녀를 품었다고 해서 하나도 흉될게 없는 사회 환경에서조차 화담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화담의 절제된 행동은 아름다움과 존경의 표상으로 외설에 휩싸여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주는 진정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부부가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신비감은 사라지고 그래서 당연히 권태가 올 수 있고 뭔가 새로운 것에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새로움에 대한 일탈을 그래서 꿈꾸는지도 모를일이나 이것이야말로 현실도피적 사고에 다름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숙명적으로 ‘규범’에 의해 살도록 돼있다.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인간으로서는 도덕이든 상식이든, 아니면 법적인 제약이든 간에 ‘질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이는 책임이자 의무이며 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의 감성적 일탈(외도)은 사회적 범죄행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도덕이나 건강한 상식은 우리 모두의 방패이며 그 사회적 규범과 약속의 수혜자는 결국 우리다.
‘모든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고 합리화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자신의 배우자가 그럴 때 어떤 기분이겠는가. 절제하므로써만이 아름다움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에 무절제하게 대응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벗고 동물을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화담이나 지미카터 같은 사람은 못되더라도 스스로 건강하게 자신을 지키려면 절제하고 심플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둠을 집착하면 그곳을 헤어나기 어렵다. 불현듯 바람처럼 찾아오는 일탈은 잠시잠깐 마음속에서 스쳐가도록 놓아두고 밝고 단순하게, 그래서 건강한 행복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탈이 그리워지고 유혹을 느낄때면 아내나 남편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사랑해’ 혹은 ‘미안해’를 뇌이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또한 아내나 남편에게 새로운 설렘을 주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잃기전에 생존경쟁의 치열한 일터를 잠시 벗어나 부부가 설렘을 갖는 둘만의 데이트 시간도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바람난 사회’는 바로 ‘나’ 개인의 각성과 절제외에는 다른 치유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진정으로 나 자신과 가정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현실도피적인 자기 기만과 위선을 벗고 충실한 가장·주부로서 건강한 사고와 절제를 지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돌을 던져야 할지도 모르는 이 바람난 사회속에서 사는 오늘, 화담이 더욱 그립다.
<취재·편집부장 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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