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후면 추수감사일이다. 그 날은 온통 미국 땅 전체가 칠면조 굽는 냄새로 진동을 하는 것 같다. 명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의 명절은 유난히 가족끼리 알콩달콩하게 모임을 갖는 계획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 설령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멀리 떨어져서 만날 수 없거나 아니면 남보다도 못한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면, 무척이나 썰렁한 명절일 것이다.
몇 주전 선교회에서 2년 정도를 함께 생활했던 한 녀석이 선교회를 떠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불쑥 나타났었다. 이제 18세가 되어 훨씬 더 남자다워진 모습이었지만 얼굴은 2년 전 약과 술에 온통 찌들어 있을 때보다도 비쩍 말라 있었고 눈빛은 살기가 돌고 있었다. 녀석의 아버지가 몇 개월 전 타주에서 사업을 시작하는데, K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K를 무작정 데려갔었다. 물론 K의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많은 치료와 끊임없는 사랑이 계속적으로 필요했었기에, 아직은 데려갈 때가 아님을 아버지에게 거듭 설명을 드렸었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없이 당신의 자식이니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더 이상 할말이 없어 K를 보내었다.
그때 K를 보내지 말아야 했다. 그 녀석은 그 곳에 가자마자 온통 생계를 도맡아 책임져야만 했다. 아버지는 알콜과 도박에 빠져 사업은 고사하고 당장에 먹을 음식조차도 살 수 없었으며, 어릴 때 어디론가 떠나버려 지금까지 소식을 알 수가 없는 엄마를 찾고, 찾고 또 찾다가 정신이 이상해진 동생, 이들이 불쌍해서 자신의 웰페어로 지금까지 돌보아 주는 할머니… 이 세 식구가 당장에 길거리로 나 앉게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급한 대로 K는 전화회사에 파트타임을 구하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본급으로는 도저히 밀려 있는 빚과 생활을 동시에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궁리 끝에 예전에 관계하던 약장사를 찾아갔고, 약을 받아다가 팔기 시작했다. 금방 돈을 만들 수가 있었고 동생을 돌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안전할 수가 있었겠는가? 경찰에 잡혔고, 한 두어 달을 Jail에서 살다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보석금을 내고 간신히 나올 수가 있었다. 두 달 동안 다시 집은 풍비박산이 나있었다. 아파트 값은 다시 밀려 있었고,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과 노름으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할머니만 방구석에 앉아 한숨과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K는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배운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Jail에서 형량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자기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은 이미 엄마가 자기를 버렸을 때 세상에서 버림받은 몸이다. 나만 망가지면 되지, 이 추운 날 제 정신이 아닌 동생은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전에 다니던 전화회사의 금고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결국 사건을 저지르고 그 돈을 할머니와 그래도 핏줄이라고 아버지에게 주고는 K는 LA로 도망을 온 것이었다. 매우 심각해 분명 추방당하는 케이스였다. 나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자식이 그 큰돈을 줄 때 분명 옳지 못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 돈을 받을 수 있는가! 나는 K에게 더 이상 도망 다니지 말라고 권고했다. 자신의 죄 값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반드시 치러야 하며 환경이나 처해진 상황에 의해 죄가 정당화가 될 수 없음을 설명하였다. K는 이 말에 수긍을 하고 자신의 죄 값을 받으러 떠났다.
K에게 이번 추수감사절은 싸늘한 철창에서 지내는 쓸쓸한 명절이 되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마음뿐이다. 그러나 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버림받는데 익숙해 있는 K의 가슴 속 깊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이 멀어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미움으로, 증오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영호 목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